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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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준구의 시문집. 이준구(李準九)[1851~1924]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평칙(平則), 호는 신암(信菴)이다. 13세 때 함안 향교에 나가 함안 군수로부터 문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 유학에 관한 서적을 깊이 연구하였다. 경술국치 후에는 노백헌(老柏軒)·정재규(鄭載圭)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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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정려의 문집. 안정려(安鼎呂)[1871~1939]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국중(國重), 호는 회산(晦山)이다. 할아버지는 각산(覺山)안평(安泙)이고, 아버지는 후각당(後覺堂)안상기(安相琦)로, 만성(晩醒)박치복(朴致馥)의 제자이다. 어머니는 강봉택(姜鳳宅)의 딸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부인은 박봉채(朴鳳采)의 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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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 기간 함안 지역에서 미 공군의 폭격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 6·25 전쟁 동안 미 공군의 폭격 과정에서 수많은 민가들과 시설들이 파괴당하였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6·25 전쟁에 뛰어든 미군 병사들은 북한의 정규군과 게릴라 부대, 또 피난민의 행렬을 구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작전에 방해가 되거나 적으로 인식되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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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서식하는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가시연꽃은 전 세계적으로 1속 1종이 서식하는 식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타이완, 중국, 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의 얕은 늪지나 연못에서 자란다. 멸종 위기 야생 식물 II급으로 지정되었다. 함안군에서 세뿔투구꽃과 함께 멸종 위기 야생 식물로 조사되었으며, 함안군대평늪과 질날늪에 서식한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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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아라가야[안라국]에 주재했던 왜의 사신. 임나 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최근에는 고대의 일본이 일정 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 지역, 즉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 지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가야에 머물렀던 왜인을 '왜의 사신', 혹은 '왜신'으로서 교역을 목적으로 가야에 주재했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리고 왜신이 머물렀던 곳이 아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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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운동은 서울로 이어져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1929년 12월 2일 밤과 3일 새벽에 경성 제국 대학을 비롯한 주요 공립·사립 학교와 시내 요소에 광주 학생 운동의 전국화를 위해 학생과 민중의 총궐기를 촉구하는 격문이 살포되었다. 강대성은 당시 서울에서 광주 학생 운동의 동맹 휴교를 주도하였다. 강대성(姜大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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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4월에 걸쳐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일제의 지배에 항거해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지역에서 발생한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인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함안 지역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인근 지역까지 만세 운동이 전파되었으며 평화 시위에서 차츰 공세적인 시위운동으로 변해갔다. 시위운동에 참가한 인적 구성은 기독교와 경명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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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 함안 지역은 예로부터 경상도의 내륙을 잇는 인적·물적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지역 조건에 의해서 유림층들이 모여 살았으며, 다수의 서원이 지역 내에 존재하였다. 특히, 지방 유림들에 의해 한말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다수의 사립 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04년(고종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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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이루어지는 생산, 분배, 소비와 관련한 모든 활동. 경상남도 함안군은 지리적으로 경상남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인근 창원시와 김해시의 배후 지역으로 농업과 공업이 고루 발전한 지역이다. 함안 평야와 법수 평야의 농업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일반 산업 단지와 농공 단지의 개발로 인근 경상남도 창원시의 창원 국가 산업 단지와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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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이루어지는 생산, 분배, 소비와 관련한 모든 활동. 경상남도 함안군은 지리적으로 경상남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인근 창원시와 김해시의 배후 지역으로 농업과 공업이 고루 발전한 지역이다. 함안 평야와 법수 평야의 농업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일반 산업 단지와 농공 단지의 개발로 인근 경상남도 창원시의 창원 국가 산업 단지와 마산 자유 무역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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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광개토 대왕 때 고구려의 5만 군대가 김해 지역까지 진출한 사건. 400년에 일어난 고구려 남정(南征)을 흔히들 고구려의 신라 구원 전쟁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전쟁은 신라 구원 전쟁에 그친 것이라기보다는 가야 사회 변화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사건이었다. 고구려가 4세기 초 낙랑군(樂浪郡)과 대방군(帶方郡)을 축출한 이후 두 군이 가지고 있던 상업적 이익을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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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시대 함안 지역에는 함안군(咸安郡)과 칠원현(漆原縣) 두 행정 구역이 자리하였다. 함안군은 신라경덕왕(景德王) 대 군현 개편에서 현무현(玄武縣)과 의령현(宜寧縣) 두 고을을 거느린 주읍(主邑)이었고, 칠원현은 칠제현(漆隄縣)으로 불리면서 오늘날 창원시 지역인 의안군(義安郡)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려 건국 후 성종(成宗)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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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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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협동조합. 협동조합 운동은 1920년대 전반에 일본의 산업조합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 이 운동에는 3·1 운동 이후 각 지역의 청년회와 구락부를 주도한 지역 유지들과 지식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국내에서 나타난 산업 조합의 유형은 일본처럼 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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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아라가야[안라국]에 주재했던 왜의 사신. 임나 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최근에는 고대의 일본이 일정 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 지역, 즉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 지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가야에 머물렀던 왜인을 '왜의 사신', 혹은 '왜신'으로서 교역을 목적으로 가야에 주재했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리고 왜신이 머물렀던 곳이 아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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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9일 발생한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 최초의 만세 운동이다. 연개장은 낙동강의 멸포 나루를 통하여 창녕 등 다른 지역과 연계되는 교통의 중심지에 있었기 때문에 수천 군중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후 경상남도 지역으로 의거가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3·1 운동 역사에 매우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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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삼도(金三道)[1896~1919]는 1896년 5월 9일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에서 태어났다. 우국지사들이 서울에서 개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참관하고 귀향한 3월 5일경 군북에서는 조상규(趙相奎)·조정래(趙正來)·조성규(趙聖奎)·조경식(趙璟植)·조형규(趙炯奎) 등이 조용대(趙鏞大)의 집에 모여 군북 장날인 3월 20일에 의거하기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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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집(金祥集)[1888~1939]은 1888년 12월 22일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났다. 한일 병합 당시 20대이던 김상집은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한의학을 배워 한의사가 되었다. 한의사로 활동하면서 1917년 변상태(卞相泰)·남형우(南亨祐) 등과 대동 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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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우곤(金宇坤)[1885~1919]은 1885년 3월 18일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들 김석규(金錫奎), 손자 김영락(金永洛), 증손자 김동화(金東華)가 있다. 김우곤은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동지들과 국권 회복을 모색하였다. 1919년 3월 고종의 장례식에 다녀온 조한휘(趙漢輝), 한종순(韓鍾淳) 등에게서 서울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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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나수범(羅守凡)[1902~1919]은 이명(異名)은 나범숙(羅凡淑)이며 나해숙(羅海淑)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양자로 나병만(羅炳萬), 손자 나희태(羅熙泰)·나정희(羅定熙)가 있다. 나수범은 1902년 3월 28일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군북신창 야학교를 졸업하고 나라를 잃은 울분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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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한 자연 습지.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함안에는 습지(濕地)가 많다. 지금은 우포늪이 있는 창녕군을 우리나라 내륙 습지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예로부터 낙동강 제1 지류인 남강의 하상이 완만해지는 함안 지역에 다다르면 크고 작은 다양한 습지가 발달하였다. 함안의 전체적인 형상은 전형적인 남고 북저 형태로 남쪽이 높으며, 북서쪽과 동쪽은 곡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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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병희(南秉熙)[1900~1959]는 1900년 2월 20일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서울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조한휘(趙漢輝), 이찬영(李讚榮) 등이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어났다. 남병희는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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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수정(盧秀貞)[1894~1948]은 1894년 12월 26일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에서 6남 5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내진(乃進)이다. 둘째 형은 노수점(盧秀占)이고, 넷째 동생은 노수동(盧秀東)이며, 막내 동생은 노수득(盧秀得)이다. 아들은 노창용(盧昌容)이고, 양손자는 노재천(盧在千), 증손자는 노동욱(盧東煜)·노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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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농산물의 재배와 생산 및 품질 관리 활동. 경상남도 함안군의 농업 지역은 북부, 동부, 남부로 나눌 수 있다. 북부 평야 지대인 법수면, 대산면 전체와 군북면, 가야읍, 칠서면, 산인면의 북부는 시설 채소의 주산지다. 동부 중산간 지대는 칠북면과 칠원읍, 칠서면의 남부 및 산인면 지역의 동북쪽 지역이 속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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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2일과 17일 2회에 걸쳐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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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판갑옷. 1997~1998년에 경남 고고학 연구소에서 함안~여상 간 도로 확장·포장 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함안 도항리·말산리 유적 가운데 13호 덧널무덤[목곽묘]에서 판갑옷이 출토되었다. 삼국 시대를 중심으로 판갑(板甲)은 영남남해안·동해안에서 확인되는 종장판갑(縱長板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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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판갑옷. 1997~1998년에 경남 고고학 연구소에서 함안~여상 간 도로 확장·포장 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함안 도항리·말산리 유적 가운데 13호 덧널무덤[목곽묘]에서 판갑옷이 출토되었다. 삼국 시대를 중심으로 판갑(板甲)은 영남남해안·동해안에서 확인되는 종장판갑(縱長板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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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 지배의 모순을 타파하고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함안 지역의 실천 활동. 1900년대 근대적 학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함안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9일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 협동조합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함안 지역은 1894년 민란을 통하여 개항 체제 아래서 빚어지고 있던 봉건적 모순과 새로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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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함안 출신의 항일 운동가. 함안의 독립운동가는 3·1 운동과 3·1 운동의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을 통해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9일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함안 지역의 연속적이고 공세적인 시위가 잇달아 일어났다. 함안 지역에서 전개된 3·1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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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동광사(東光寺)는 1960년에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 외동 마을 출신의 재일 교포 조무조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진언종 소속이었으나 이후에 종파를 변경하여 현재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동광사에서는 음력 초하루와 지장재일인 18일에 법회를 열고 있다.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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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동광사(東光寺)는 1960년에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 외동 마을 출신의 재일 교포 조무조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진언종 소속이었으나 이후에 종파를 변경하여 현재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동광사에서는 음력 초하루와 지장재일인 18일에 법회를 열고 있다.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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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말산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토기. 일본 제국주의는 1916년에 조선 총독부 산하 고적 조사 위원회를 설립하여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유린에 착수하였다. 고적 조사 5개년기[1916~1920]의 제2차 연도인 1917년에는 가야 고분에 대한 대규모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과정에서 함안 말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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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몽골에서 활동한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이태준의 삶을 조명한다. 이태준(李泰俊)은 1883년(고종 20) 11월 23일 아버지 이찬(李瓚)과 어머니 박평암(朴平岩)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자(字)는 원일(元一)이며, 호(號)는 대암(大岩)이다. 인천 이씨이며 족보에는 ‘뜻과 기개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세브란스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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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 활동, 그리고 문화 예술과 관련된 단체와 행사. 경상남도 함안 지역은 진산인 여항산(艅航山)과 그 지맥인 광려산(匡廬山), 방어산(防禦山)에 수원을 둔 함안천(咸安川), 광려천(匡廬川), 석교천(石橋川) 줄기가 낙동강과 남강으로 유입되면서 하류에 비옥한 삼각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형성된 충적 평야로 농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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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 활동, 그리고 문화 예술과 관련된 단체와 행사. 경상남도 함안 지역은 진산인 여항산(艅航山)과 그 지맥인 광려산(匡廬山), 방어산(防禦山)에 수원을 둔 함안천(咸安川), 광려천(匡廬川), 석교천(石橋川) 줄기가 낙동강과 남강으로 유입되면서 하류에 비옥한 삼각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형성된 충적 평야로 농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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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경용(朴敬用)[1892~1961]은 1892년 10월 26일 함안군 함안면 북촌동에서 태어났다. 족보에 자는 영순, 박경현으로 올라 있다. 아들은 박상태(朴相兌)·박태봉(朴泰鳳)·박삼용(朴三用), 손자는 박대근(朴大根)·박현근(朴賢根)·박자근(朴自根)·박순근(朴諄根)·박은래(朴恩來)·박용호(朴容護)이다. 박경용은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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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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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울에서 벌어진 3·1 운동 소식을 듣고 손종일(孫鍾一)·이원식·황대수 등이 모의하여 3월 24일 칠원 장날에 거사하기로 하면서 칠원면구성리 시장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4시경 장터에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이자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였고, 군중은 칠원 시가지를 행진하고 경찰 주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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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주범(朴注範)[1885~1919]은 자는 선홍(善洪), 호는 동강(東崗)이며, 초명은 박주한(朴注漢)이다. 부인은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아들은 박윤근(朴閏根), 박재근(朴在根)이다. 손자는 박희석(朴熙石), 박희철(朴熙喆), 박희관(朴熙琯), 박용기(朴容基)이다. 독립운동가 조용대(趙鏞大)가 매형이다. 박주범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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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낙삼(白樂三)[1897~1934]은 1897년 7월 7일 함안군 가야면[현 가야읍] 말산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백성수(白性壽)이다. 손자는 백문기(白文基)·백태기(白泰基), 손녀는 백덕기(白德基)이다. 백낙삼은 서울에서 거행된 3·1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고 돌아와 항일 사상으로 무장된 젊은 동지들과 함께 3월 19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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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출토되는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토기. 불꽃무늬 굽구멍 토기[화염문 투창 토기]란 5세기 대 함안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한 함안 양식 토기의 한 종류이며, 화염형 굽구멍 토기라고도 불린다. 가야 토기 중 가장 독특한 굽구멍 형태를 지니고 있는 불꽃무늬 토기는 주로 4세기 후반에 처음 출연하여 6세기 전반까지 아라가야와 그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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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에 있는 산업 보일러 제조업체. 비에이치아이는 산업 보일러 제조 기술력 및 경쟁력 향상과 함께 경상남도 함안 지역 인재 채용을 통한 지역 경제 발전과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비에이치아이는 1998년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고압가스 특정 설비 제조 허가를 획득했고, 이어 ISO 9001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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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에 있는 산업 보일러 제조업체. 비에이치아이는 산업 보일러 제조 기술력 및 경쟁력 향상과 함께 경상남도 함안 지역 인재 채용을 통한 지역 경제 발전과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비에이치아이는 1998년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고압가스 특정 설비 제조 허가를 획득했고, 이어 ISO 9001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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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태곡리에 있는 플랜트 기자재, 선박 엔진 구조재 제조업체. 삼영 엠텍은 ‘고객 번영, 사회 공헌, 주주 및 임직원 번영’을 경영 이념으로 삼고 선박용 엔진, 장대 교량용 특수 소재와 건설 중장비, 철도 차량, 삼용차 부품 등의 산업용 소재와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삼영 엠텍은 플랜트 기자재와 선박 엔진 구조재 등 산업에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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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목사. 손양원(孫良源)[1902~1950]은 1902년 6월 3일 함안군 칠원읍 덕산4길 39[구성리 685]에서 독립운동가 손종일(孫宗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김은수이다. 아들은 손동인(孫東印)과 손동신(孫東信)이다.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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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종일(孫鍾一)[1872~1945]은 1872년 12월 6일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들 손양원(孫良源), 손자 손동인(孫東印)과 손동신(孫東信)이 있다. 칠원 교회를 설립하고 장로로 활동하며 민족의 힘을 길러야만 나라를 찾을 수 있다고 알렸다. 기독교의 연락망을 통해 3·1 독립 선언 시위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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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건축물. 수리 조합 관사(水利組合官舍)는 두 가옥으로 나뉘어 이행수 가옥은 함안군 가야읍 가야5길 21[말산리 456-11], 정환철 가옥은 함안군 가야읍 가야5길 21-1[말산리 456-10]에 있다. 수리 조합 관사는 현재 이행수 가옥과 정환철 가옥으로 바뀌어 있다. 이행수 가옥은 2000년대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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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하는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 습지(濕地)란 유속이 느리며 연중 수자원에 의해 습윤된 조건을 갖추거나 유지하고 있으며, 생물의 다양성이 극히 높은 지역을 말한다. 이를 '늪지'라고도 한다. 함안은 우리나라에서 자연 늪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이름을 가진 늪이 무려 55개나 되고, 1~2년만 물을 담으면 늪으로 살아나는 지역도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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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하는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 습지(濕地)란 유속이 느리며 연중 수자원에 의해 습윤된 조건을 갖추거나 유지하고 있으며, 생물의 다양성이 극히 높은 지역을 말한다. 이를 '늪지'라고도 한다. 함안은 우리나라에서 자연 늪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이름을 가진 늪이 무려 55개나 되고, 1~2년만 물을 담으면 늪으로 살아나는 지역도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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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란 조선 후기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출현하였다. 불교, 기독교를 비롯한 기성 종교가 종교적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민중에게 외면당하면서 신종교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된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유입된 신종교는 원불교처럼 한국 토생적(土生的)인 것도 있고,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처럼 기독교를 재해석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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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시대 아라가야 지배자의 호칭. 안라 하한기(安羅下旱岐)는 안라 한기(安羅旱岐)와 비교될 수 있다. 한기는 군장(君長)의 의미이므로 하한기는 군장 아래의 지배층으로 볼 수 있으며, 한기층의 분화로 이해될 수 있다. 한기는 왕 혹은 한기로 호칭되었으며, 그 아래에 차한기와 하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라 왕의 존재가 확인되므로 안라 왕 아래에 차한기, 하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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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안교준(安敎俊)이고, 아들은 안승문(安承文), 손자는 안량식(安良植), 증손자는 안희주(安熙周)·안희상(安熙商)·안희원(安熙元)이다. 안지호(安知鎬)[1875~1921]는 1875년 9월 21일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으나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에서 생활하였다.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여 서당의 선생으로 일하였다. 19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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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시인이자 정치가. 양우정(梁又正)[1907~1975]은 1907년 12월 19일에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서 아버지 남원 양씨한익(漢益)과 어머니 김해 김씨이춘(二春)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양창준(梁昌俊)이었으나 8·15 광복 전에는 필명으로 양우정(梁雨庭)을 쓰다가, 8·15 광복 후에는 양우정(梁又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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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울에서 벌어진 3·1 운동 소식을 듣고 손종일(孫鍾一)·이원식·황대수(黃大秀) 등이 모의하여 3월 23일 칠원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당일 오후 4시경 장터에 결집한 1,000여 군중은 칠원 시가지를 행진하고 경찰 주재소를 포위하기도 하였다. 이후 엄주신·손종일 등의 주동으로 4월 3일 오후 3시에 2차 시위가 일어났다. 8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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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함안 지역은 경상남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면서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두 강의 유역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서 함안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였다. 함안 지역에서 사람이 산 흔적은 구석기 시대부터 있다. 2003년 칠원 용산리와 가야 도항리 일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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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 국적의 노동자. 경상남도 함안군은 2012년 9월 기준으로 인구가 6만 7355명이며, 함안군 기업의 근로자 수는 3만 2000명이다. 내국인 근로자는 2만 8980명이고, 외국인 근로자는 3,020명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전체 인구 중 근로자의 비율이 47.1%이며, 내국인 근로자는 43.0%, 외국인 근로자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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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기독교 목사. 산돌 손양원(孫良源)은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맞서 저항한 항일 운동가이자, 두 자녀를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아 용서와 사랑의 화신으로 추앙되고 있는 함안 출신의 기독교인이다. 1902년(고종 39)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난 손양원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1908년(순종 2)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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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기독교 목사. 산돌 손양원(孫良源)은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맞서 저항한 항일 운동가이자, 두 자녀를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아 용서와 사랑의 화신으로 추앙되고 있는 함안 출신의 기독교인이다. 1902년(고종 39)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난 손양원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1908년(순종 2)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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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 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 원효암(元曉庵)은 원효 대사(元曉大師)와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수도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다만 절 이름을 원효암이라 하고 절 위쪽에 의상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효와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중에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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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상진(尙眞). 아들로 이영호(李永浩)·이봉호(李奉浩)가 있고, 손자로는 이병균(李秉均)·이병진(李秉進)·이병천(李秉天)이 있다. 이경흠(李卿欽)[1874~1919]은 1874년 9월 19일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3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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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에 있는 법정리. 이령리(二靈里)에는 큰 두 영[산]이 있는데 동쪽에는 어룡태[지금의 어령태]라는 큰 영이 있고 서쪽에는 땅곡이라는 곳에서 낙동강(洛東江) 쪽으로 길게 뻗은 큰 영이 있다. 이 두 영을 따서 동쪽에 있는 영을 영동(靈東), 서쪽에 있는 영을 영서(靈西)라고 불렀다. 이렇게 영서와 영동 두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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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성숙(李成淑)[1924~1997]은 1924년 4월 2일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에서 태어났다. 함안 공립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도쿄에 있는 정칙 중학교를 입학하였다. 1940년 중학교 여름 방학 때 함안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는 중국 대륙 진출을 위하여 일본의 조선 지배가 더욱 강고하던 시기이다. 즉 민족 말살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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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필(李元弼)[1884~1919]은 1884년 4월 30일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한일 병합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 사는 외사촌 형 이경흠(李卿欽)과 서로 내왕하면서 독립운동에 몰두하였다. 이경흠에게서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과 함안읍 만세 운동 계획을 전해 듣고, 같은 마을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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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인구(李寅九)[1877~1924]는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배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학 교사], 한종순(韓鍾淳)[당시 함안 면장 아들], 박건병(朴鍵秉)[동명 학교 교사] 등에게서 서울의 독립운동에 대해 전해 들었다. 한종헌(韓鍾憲)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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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형(李在衡)[1886~1919]은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경행(景行)이다. 군북면 사무소가 개소될 때 면 서기로 취직하였다. 겉으로는 일제의 식민 정책에 응하였으나, 실제로는 조국의 광복을 도와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아 왔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삼엄한 감시에도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이 성공하게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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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문신. 이정(李瀞)[1541~1613]은 조선명종, 선조, 광해군 연간에 경상 우도 지역에서 활약한 학자이다. 남명(南冥)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조식의 선양 사업에 힘썼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호는 모촌(芧村). 증조할아버지는 병조 참지(兵曹參知)를 지낸 이중현(李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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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초명은 영구(齡九), 자는 성오(聖五)·평칙(平則), 호는 신암(信庵)·두산(斗山). 여주 이씨함안 입향조 이란(李鸞)의 장손 이극(李極)이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山仁)에서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杜谷)으로 이주하여 대대로 세거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용필(李容必)이고, 아버지는 만송(晩松)이종화(李鍾和)이다. 이준구(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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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초명은 영구(齡九), 자는 성오(聖五)·평칙(平則), 호는 신암(信庵)·두산(斗山). 여주 이씨함안 입향조 이란(李鸞)의 장손 이극(李極)이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山仁)에서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杜谷)으로 이주하여 대대로 세거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용필(李容必)이고, 아버지는 만송(晩松)이종화(李鍾和)이다. 이준구(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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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아라가야[안라국]에 주재했던 왜의 사신. 임나 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최근에는 고대의 일본이 일정 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 지역, 즉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 지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가야에 머물렀던 왜인을 '왜의 사신', 혹은 '왜신'으로서 교역을 목적으로 가야에 주재했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리고 왜신이 머물렀던 곳이 아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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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태길(李泰吉)[1920~2014]은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함안 국민학교[현 함안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 사범 학교 심상과에 입학하였다. 대구 사범 학교는 1929년 개교하였는데 민족의식이 남달랐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태길은 4학년이었던 1939년 10월 말에 학년별로 윤독회를 조직하였다. 윤독회에서 민족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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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함득(李咸得)[1912~1956]의 본적은 함안군 함안면 북촌동 964번지이다. 일본오사카에서 태어났으며, 사립 기비[吉備] 상업 학교를 중퇴하였다. 중퇴한 뒤에 일본 노동조합 전국 협의회 토건(土建)에 가입하여 노동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노동조합 전국 협의회는 1928년 3·15 사건 이후 치안 유지법에 의해 강제 해산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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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희석(李喜錫)[1892~1950]은 함안군 함안읍 대산리에서 태어났으며, 함안군 가야면 검암리에서 자랐다. 1911년 상경하여 중동 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부터 이중건(李重乾)이 설립한 함안군 여항면동명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이희석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함안 지역 인사 한학 교사인 조한휘(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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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에서 찾은 고대 삼국 시대 아라가야 사람과 문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 교류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가야(伽耶) 시기에 이르러 그 관계는 더욱 확대되었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선진 문화뿐 아니라 가야의 문화가 일본 열도로 전파되었다. 그러한 흔적들은 현재 일본 열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야 중에서도 아라가야(阿羅伽耶)의 문화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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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함안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 함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저항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3·1 운동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어 일제 무력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식민지 민족 해방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로 상봉면·하봉면·사봉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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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함안 지역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벌어진 전투. 임진왜란의 초기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전쟁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윤 11월에 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중국 측의 사신이 파견되어 왔을 때 영의정 등이 왕에게 올린 보고문이 주목된다. 중국에 보내기 위하여 작성된 이 보고문은 당시 조선의 처지에서 전황에 대한 허위나 가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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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종식(張鍾植)[1869~1949]은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함안 지역 인사 한학 교사인 조한휘(趙漢輝)와 이찬영(李讚榮) 등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여 3·1 운동을 경험하였다. 이들은 독립 선언문을 들고 함안으로 돌아와서 이희석(李喜錫), 한종순(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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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왜에서 아라가야에 파견했던 사신들. 재안라 제왜신(在安羅諸倭臣)은 왜가 아라가야(阿羅伽倻)에 파견했던 사신들로서 교역을 위해 아라가야에 주재하였다. 또한 아라가야의 독자성 유지를 위한 대외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재안라 제왜신'이라는 기록은 『일본서기(日本書紀)』흠명기 15년(554) 12월조에 나타난다. 이들은 안라[아라가야]에 있었던 왜의 사신으로서 일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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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현규(鄭鉉奎)[1924~1995]는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1924년 1월 20일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서 태어났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서 나고야[名古屋] 소재의 소화 정기 공업소(昭和精機工業所)의 철공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3년 2월 하순 전진(前津) 실업 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일제의 식민 통치는 착취와 억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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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강제(趙崗濟)[1923~1952]는 1923년 2월 14일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교사가 되기 위해 대구 사범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 조직인 문예부(文藝部)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 맞섰다. 당시 대구 사범 학교 문예부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항하여 국학 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비밀 결사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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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경규(趙璟奎)[1876~1950]는 1876년 6월 1일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군북의 유림은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3월 중순 조용대(趙鏞大)의 사랑채에 모여 의거를 계획하였다. 당시 모의에는 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조정래(趙正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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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계승(曺啓承)[1880~1943]은 1900년 옥천(沃川)송병선(宋秉璿)을 찾아가 교화를 받았고, 1905년 송병선이 순국한 후 복수를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안지호(安智鎬), 조성규(趙聖奎), 안재영(安在瑩) 등과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함안 장날에 의거하기로 모의하고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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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동규(趙銅奎)[1885~1959]는 자는 명칠(明七)이고, 호는 이봉(夷峯)이다. 조동규의 아들은 조용호(趙鏞昊)가 있고, 손자로는 조양제(趙良濟)와 조국제(趙國濟) 등이 있다. 조동규는 1885년 6월 2일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였고 일제의 조선 강점을 한으로 여겼다. 함안군 대산면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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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상규(趙相奎)[1866~1927]는 아들로 조용석(趙鏞錫)·조용재(趙鏞宰)가 있다. 손자로 조덕제(趙德濟)·조일제(趙日濟)·조효제(趙孝濟)·조종제(趙種濟)·조웅제(趙雄濟)·조흥제(趙興濟)가 있고, 증손자는 조경래(趙敬來)·조석래(趙碩來)·조정래(趙正來)·조국래(趙國來)·조창호(趙昌虎)·조현래(趙賢來)를 두었다. 조상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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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시위는 3월 20일 오전 9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신창 야학교에서 시작되어 군북 장터로 퍼져 나갔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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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에 의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이 결정되었다. 조성규는 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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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조정래(趙正來)·조성규(趙聖奎)·조경식(趙璟植)·조형규(趙炯奎)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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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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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성집(聖執), 호는 운오(雲塢)·황연(况淵)·취방(醉放). 조려(趙旅)의 14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진홍(趙鎭洪)이고, 할아버지는 조태순(趙泰淳)이다. 아버지는 조달직(趙達稙)이며, 어머니는 이유간(李有幹)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해주 정씨(海州鄭氏)와 혼인하였으나 사망하자 다시 이현주(李鉉周)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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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문학 평론가. 석재(石齋) 조연현(趙演鉉)[1920~1981]은 1920년 9월 8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아버지 조문태(趙文台)와 어머니 김복선(金福善)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안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고성 고등 보통학교와 중동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자퇴하고, 배재 고등 보통학교에 편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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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구(趙鏞九)[1882~1936]는 1882년 12월 13일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에서 태어났으며, 슬하에 3녀를 두었다. 을사조약 이후 국권 회복에 몰두하여 가세가 기울고, 자식 넷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라 없는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자라서 왜놈의 종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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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대(趙鏞大)[1880~1919]는 고조할아버지는 조여필(趙汝弼)이고, 아버지는 조혁규(趙赫奎)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로 조만제(趙晩濟)·조한제(趙漢濟)·조봉제(趙鳳濟)가 있고, 9명의 손자가 있다. 조용대는 1880년 4월 7일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고종 장례식에 다녀온 동지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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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섭(趙鏞燮)[1890~1919]은 1890년 2월 1일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6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고종이 붕어(崩御)하자 헤진 상복을 입고 애통해하였다. 고종 장례식에 다녀온 동지들에게서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조상규(趙相奎), 김우곤(金宇坤) 등과 3월 20일 군북 장날에 의거하기로 결의하였다. 조용섭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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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시위는 3월 20일 오전 9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신창 야학교에서 시작되어 군북 장터로 퍼져 나갔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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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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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이(趙彛)는 일찍이 중이 되었으나 환속하여 문과에 급제하였다. 원나라에 가서 황제가 거처하는 곳을 출입하면서 일본을 회유하는 데에 고려를 앞세울 것을 종용하여 고려의 처지를 어렵게 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초명은 인여(藺如). 조이는 한때 승려로 활동하다 환속한 다음 과거 공부를 해서 진사에 급제하였다. 뒤에 나라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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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한국화가. 조정규(趙定奎)[1892~1966]는 1892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백양(伯陽)이다. 서당과 여항산의상대에서 한학을 배운 후, 서울 경신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간회 활동을 하며 항일 운동을 펼치다 함안군 군북면하시장(下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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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형진(亨進), 호는 화헌(和軒).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의 13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방규(趙邦奎)이고, 할아버지는 파서(巴西)조용진(趙鏞振)이다. 아버지는 성와(誠窩)조형제(趙瑩濟)이며, 어머니는 이형모(李馨模)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부인은 이현기(李鉉基)의 딸 재령 이씨로, 아들은 조현한(趙顯漢)·조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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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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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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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의거는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 거행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2시 3,0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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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이 거행되었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형규·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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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이 거행되었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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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기업인.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만우(晩愚).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18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용돈이고, 어머니는 안부봉이며, 부인은 하정옥이다. 조홍제(趙洪濟)[1906~1984]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글공부를 시작했고, ‘백세청풍(百世淸風)’을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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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초자연적 존재 혹은 존재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들의 힘을 빌어 이상적인 삶에 대한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각종 의식·의례 행위를 지칭한다. 2016년 10월 현재, 경상남도 함안군에는 불교, 유교, 천주교, 개신교 외 기타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가 분포하고 있다. 불교는 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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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영호(周泳鎬)[1898~1963]는 1898년 7월 10일 지금의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벌어진 3·1 운동 소식을 듣고 손종일(孫鍾一), 이원식, 황대수, 신영수, 주영호, 황영환(黃英煥), 박경천, 윤사문, 윤형규 등이 모의하여 3월 24일 칠원 장날에 거사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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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 있는 한국 천리교 경남 교구 소속의 천리교 교회. 천리교(天理敎)는 일본인 나카야마 미키[中山美伎]가 천리왕명(天理王命)의 계시를 받고, 1838년에 일본의 나라현[奈良県] 천리시(天理市)를 중심으로 창립한 신종교이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유입되어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약간의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 광복 후에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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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산업 중 가축을 사육하거나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업종.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사육되는 가축은 주로 한[육]우, 젖소, 돼지, 닭, 개, 말, 사슴, 산양, 토끼 오리, 꿀벌 등 10여 종류이며, 축산 농가 소득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1~2두 사육 농가는 거의 없고, 대규모로 사육하는 기업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함안군 축산 농가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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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혼이 흐르는 역수의 땅 함안에서 불의에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함안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함안은 예로부터 충성스럽고 절개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고장이다. 조선 왕조를 부정했던 조순(趙純), 학자 모은(茅隱)이오(李午)가 있으며,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했던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1420∼1489]도 함안 사람이다. 박한주(朴漢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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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8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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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3일과 4월 3일·8일·13일 4회에 걸쳐 경상남도 함안군칠원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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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는 콘크리트 펌프카 부분품 제조업체. 케이씨이피 중공업은 콘크리트 펌프카 부분품의 생산과 함께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인재를 채용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케이씨이피 중공업은 2002년 1월 케이씨이피 산업으로 설립되었다. 2002년 5월 법인으로 전환하며 케이씨이피로 개칭되었고,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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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도로, 철도 등을 연결하기 위하여 산지 등을 통과하도록 만든 통로. 터널은 산이나 바다에 있는 암반이나 흙을 인공적으로 관통시켜 도로·철도·지하철 등의 교통 시설과 수로 등에 설치하는 시설이다. 1945년 이전에는 극소수의 도로 터널과 북한에 있는 소수의 발전용 수로 터널이 대부분이었고, 철도용 터널과 광산용 터널도 비교적 수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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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도로, 철도 등을 연결하기 위하여 산지 등을 통과하도록 만든 통로. 터널은 산이나 바다에 있는 암반이나 흙을 인공적으로 관통시켜 도로·철도·지하철 등의 교통 시설과 수로 등에 설치하는 시설이다. 1945년 이전에는 극소수의 도로 터널과 북한에 있는 소수의 발전용 수로 터널이 대부분이었고, 철도용 터널과 광산용 터널도 비교적 수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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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파산 봉수대가 있는 봉화산의 가야 시기 이름. 『일본서기(日本書紀)』 흠명기(欽明紀) 22년 조에 신라가 아라 파사산에 성을 쌓아 일본에 대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라 파사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함안군 산천조 및 봉수조에 나오는 ‘파산(巴山)’으로 비정된다. 파산은 지금의 봉화산(烽火山)으로 봉수대는 아라가야(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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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에 있는 공작 기계 및 산업 기계 제조업체. 한국 정밀 기계는 국내 대형 공작 기계 제조 기술의 증진으로 국내외 산업 발전을 견인함은 물론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고용 확대로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60년 3월 한국 금속 공업사로 창립되었다. 1998년 한국 정밀 기계로 상호를 변경한 이래 한국 대형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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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에 있는 주강품 생산 철강업체. 한국 주강은 국내 주강 분야의 선두 제조업체이며, 한국 증권 거래소 상장 기업이다. 한국 주강은 우수한 주강 및 주철 제조를 통해 관련 산업을 후방 지원하고, 함안을 비롯한 지역 인재의 채용을 통해 지역 및 국내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60년 3월 한국 금속으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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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에 있는 신종교 단체. 한국 SGI는 1930년에 일본의 목구상삼랑(牧口常三郞)이 설립한 창가학회(創價學會)의 해외 조직이다. 2대 회장 호전성성(戶田城聖) 때에 ‘창가학회’로 종명을 변경하였다. 일련정종과 교리적 대립으로 1990년에 결별하고 독자적인 신흥 종교 단체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1961년에 서울과 대구를 중심으로 창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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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 있는 실내 생활 체육 시설. 우리나라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함안 3·1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3·20 군북 독립 만세 운동'은 약 5,000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하였으며, 일본 헌병의 공포탄에도 해산하지 않고 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이에 포병대와 헌병이 조준 사격을 하여 겨우 해산시켰는데, 조선인 사망자는 남자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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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 있는 실내 생활 체육 시설. 우리나라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함안 3·1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3·20 군북 독립 만세 운동'은 약 5,000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하였으며, 일본 헌병의 공포탄에도 해산하지 않고 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이에 포병대와 헌병이 조준 사격을 하여 겨우 해산시켰는데, 조선인 사망자는 남자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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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함안 지역의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조합. 함안 농민 조합은 일제 강점기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타파 및 농민 운동의 발전과 농민의 단결을 위해 설립되었다. 함안 농민 조합은 1926년 10월 26일 조진규, 조문극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함안 소작인 조합에서 비롯되었다. 함안 소작인 조합은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퇴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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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일원에서 1993년부터 매년 4월 중순 열리는 수박 축제. 수박은 함안군의 대표 농작물로 2015년 기준 전국 수박 생산의 11.9%, 경상남도의 52.4%를 차지하고 있다. 1,636개 농가에 시설 하우스 재배 면적 16.83㎢로 전국의 14%, 경상남도의 50%를 차지하며, 연간 6만 5022t을 생산하고 있다. 함안군은 국내 수박 생산의 시배지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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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이씨는 이상(李尙)을 시조로 하고 고려조부터 함안에 토착하여 대대로 살아온 성씨이다. 이를 '파산 이씨(巴山李氏)'라고도 한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공통으로 이씨·조씨(趙氏)·채씨·윤씨·유씨(劉氏)·정씨(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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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 지역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협동조합. 함안 협동조합은 일제 강점기 농촌 지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를 위해 활동한 함안 지역의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 운동은 1920년대 전반에 일본의 산업조합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 이 운동에는 3·1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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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읍내 장날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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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에 있는 장학 문화 재단. 해남 장학 문화 재단은 「공익 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장학금 지급, 교육 관련 사업 지원, 향토사 학술 연구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사회 일반의 이익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 출신 사업가 조성제[1926년 생, 일본도쿄 거주, 동성 상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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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현재까지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 역사.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함안의 인구, 지역, 행정, 사회 문화 등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변화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은 현재 가야읍(伽倻邑)을 중심으로 함안면(咸安面), 군북면(郡北面), 법수면(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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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현재까지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 역사.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함안의 인구, 지역, 행정, 사회 문화 등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변화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은 현재 가야읍(伽倻邑)을 중심으로 함안면(咸安面), 군북면(郡北面), 법수면(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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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영환(黃英煥)[1899~?]은 1899년 11월 28일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황의규(黃議奎)·황효규(黃孝奎)·황무규(黃武奎)가 있고, 손자는 황선욱(黃善昱)·황선은(黃善垠)·황선정(黃善政)·황선영(黃善暎)을 두었다. 칠원면구성리 시장 만세 운동은 기독교 장로이자 지방 유지인 손종일(孫鐘一)과 지역 각 집안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