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명 학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32
한자 儆明 學校
영어공식명칭 Kyungmyeong School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노익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교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경명 학교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9년 3월 9일 - 경명 학교 칠북면 이령리 연개장터 만세 운동 주도
최초 설립지 경명 학교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성격 근대 교육 기관
설립자 김세민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에 있었던 교육 기관.

[변천]

함안 지역은 예로부터 경상도의 내륙을 잇는 인적·물적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지역 조건에 의해서 유림층들이 모여 살았으며, 다수의 서원이 지역 내에 존재하였다. 특히, 지방 유림들에 의해 한말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다수의 사립 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04년(고종 41)에 이령 교회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경명 학교(儆明學校)가 설립되었다. 설립 이후 마산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1911년 첫 졸업생으로 이순필(李順弼), 김수홍(金守洪), 김정오(金正悟), 김응조(金應祚)를 배출하였다.

[교육 활동]

1919년 3월 9일에 경명 학교 교원들과 이령 교회가 주축이 되어 칠북면 이령리연개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칠북면 이령리연개장터 만세 운동은 타 지역보다 비교적 빨리 근대 문물에 눈을 뜬 유림 세력의 애국심과 여기에 기독교의 실천 정신이 가미되었기에 가능하였다. 김세민과 김두량(金斗良) 등이 교회에 모여 독립운동을 위한 준비 모임을 가졌고, 연개장날에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특히 이들이 연개장날을 의거일로 정한 이유는 연개장터가 마산과 부산의 해산물과 창녕, 밀양 등의 농산물을 교역하는 곳으로 비교적 군중 동원이 용이하고 일본 경찰의 감시가 느슨하기 때문이었다. 1919년 3월 9일 연개장터에는 수천 명이 모였는데, 김세민이 대회사를 하고 아들 김정오가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낭독이 끝난 후, 지역 유지와 경명 학교 학생들이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연개장터 의거는 독립운동의 기조에 입각하여 평화 시위로 끝났으며, 이후 다른 시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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