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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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담안 마을에서 복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복정의 유래」는 재령 이씨모은(矛隱)이오(李午)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 이경성(李景成) 현감의 정부인(貞夫人) 여주 이씨가 시어머니를 섬기는데, 효행이 남달라 시모가 노환으로 전복을 먹고 싶다고 하자 산골이라 구할 길이 없어 동분서주할 때 하늘이 감복하여 집안 우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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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에 은거한 이오의 실기. 이오(李午)의 본관은 재령(載寧), 호는 모은(茅隱)이다. 일찍이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두 선생의 문하에 종유하면서 의리의 학문에 독실하여 사림에게 추앙을 받았다. 공양왕 때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하지 않았으며, 고려가 망하자 함안군(咸安郡) 모곡리(茅谷里)에 은거하였다. 후에 조선태종 때에 여러 번 나라에서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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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간행된 재령 이씨 입향조 이중광의 후손인 이현재, 이세태, 이세후의 시문집. 이현재(李玄栽)[1620∼1674]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자는 배원(培元), 호는 죽촌(竹村)이다. 진주(晋州) 지수면(智水面) 청원리(淸源里)에서 태어났다. 고려 충절신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예로 아버지는 행정(杏亭)이중광(李重光)이며, 어머니는 신갑의 딸인 영산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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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시대 함안 지역에는 함안군(咸安郡)과 칠원현(漆原縣) 두 행정 구역이 자리하였다. 함안군은 신라경덕왕(景德王) 대 군현 개편에서 현무현(玄武縣)과 의령현(宜寧縣) 두 고을을 거느린 주읍(主邑)이었고, 칠원현은 칠제현(漆隄縣)으로 불리면서 오늘날 창원시 지역인 의안군(義安郡)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려 건국 후 성종(成宗)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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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경상남도 함안군은 창원시, 진주시 근교에 위치한 농촌 지역으로 남해 고속 도로, 중부 내륙 고속 도로, 경전선(慶全線), 지방도 등이 연결된 뛰어난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어 21세기에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함안군에는 수려한 자연 경관, 유서 깊은 문화 유적,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문화·체험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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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경상남도 함안군은 창원시, 진주시 근교에 위치한 농촌 지역으로 남해 고속 도로, 중부 내륙 고속 도로, 경전선(慶全線), 지방도 등이 연결된 뛰어난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어 21세기에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함안군에는 수려한 자연 경관, 유서 깊은 문화 유적,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문화·체험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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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광주 안씨(廣州安氏)는 경기도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태조 때 대장군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삼고 있다. 오늘날 광주 안씨는 모두 함안 입향조 안유(安綏)의 후손들이다. 광주 안씨를 '광릉 안씨(廣陵安氏)'라고도 한다. 함안군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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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등의 기록물. 함안 지역 사람들이 남긴 기록 유산으로는 문집류, 책판류, 금석문 등이 있다. 문집이나 실기류는 대부분 개인이나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로 그 가운데는 일부 책판이 전해 오는 것들도 있다. 그 외 금석문으로는 개인 묘소의 묘비(墓碑)와 신도비(神道碑) 등이 있으며, 공신 교서 1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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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초명은 성직(性稷), 자는 형국(馨國), 호는 귀천(龜川). 시조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며, 고려 판도판서 국자사를 지낸 김관(金管)의 후손이다. 삼현파이며 절효 선생(節孝先生)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기도 하다. 6대조 김선홍(金善弘)이 창원에서 칠원으로 이거하면서 대대로 칠원에 살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응찬(金應瓚)이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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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님께 바치는 파수 곶감에 얽힌 전설, 곶감의 유래, 곶감의 생산 과정과 효능 등에 대한 이야기. 한국에서 감에 대한 기록은 1138년(고려 인종 16) 때에 '고욤'에 대한 것이 최초라고 전한다. 또한 고려원종[1284~1351] 시기에 원(元) 나라에서 수입된 『농상집요(農桑輯要)』에도 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성종 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감을 중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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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소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남강 서원(南岡書院)은 조선 시대 서원으로서 고려 시대 함안 출신인 이방실(李芳實)[1298~1362] 장군을 배향(配享)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이다. 남강 서원은 고려 후기 무신, 본관이 함안이며, 함안 이씨(咸安李氏)의 시조인 이방실 장군을 기리고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설립되었다. 18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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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명관리(明館里)에는 명지골·명동(明洞)·서재골·평광(平廣)의 자연 마을이 있다. 명관리(明館里)의 명칭은 명동 마을과 평광 마을의 지명을 합하여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명관리는 약 700년 전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형성되었다. 원래는 평관(平館)이던 것을 1586년(선조 19) 함안 군수 한강(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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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명관리(明館里)에는 명지골·명동(明洞)·서재골·평광(平廣)의 자연 마을이 있다. 명관리(明館里)의 명칭은 명동 마을과 평광 마을의 지명을 합하여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명관리는 약 700년 전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형성되었다. 원래는 평관(平館)이던 것을 1586년(선조 19) 함안 군수 한강(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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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는 법정리. 모곡리(茅谷里)는 띠가 많았다 하여 띠실이라 부르다가 한문으로 음차하여 모곡(茅谷)이라고 불렀다. 한편 고려 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자 현자(賢者)들이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숨어 버릴 때 두문동 72인 중 한 명인 이오(李午)가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였다. 은거지 주위에 담장을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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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선명(善鳴), 호는 일암(一庵).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인 문다성(文多省)이고, 중시조는 조선 시대 문익점(文益漸)의 둘째 아들인 순질공(純質公)문중성(文中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용득(文庸得)이고, 할아버지는 문광환(文光煥)이다. 아버지는 서계(西溪)문재환(文在桓)이며, 어머니는 이용삼(李容三)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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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문인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창작 활동. 농경 문화가 일찍부터 정착하여 발달한 함안은 서원, 향교, 불교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예술이 꽃을 피운 곳이다. 문학 역시 인간의 삶을 반영하여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변화를 거듭해 왔다. 선사 시대부터 발생한 문학의 기원은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말산리 고분군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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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 활동, 그리고 문화 예술과 관련된 단체와 행사. 경상남도 함안 지역은 진산인 여항산(艅航山)과 그 지맥인 광려산(匡廬山), 방어산(防禦山)에 수원을 둔 함안천(咸安川), 광려천(匡廬川), 석교천(石橋川) 줄기가 낙동강과 남강으로 유입되면서 하류에 비옥한 삼각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형성된 충적 평야로 농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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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 활동, 그리고 문화 예술과 관련된 단체와 행사. 경상남도 함안 지역은 진산인 여항산(艅航山)과 그 지맥인 광려산(匡廬山), 방어산(防禦山)에 수원을 둔 함안천(咸安川), 광려천(匡廬川), 석교천(石橋川) 줄기가 낙동강과 남강으로 유입되면서 하류에 비옥한 삼각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형성된 충적 평야로 농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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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방어산성(防禦山城)의 정확한 초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우왕(禑王) 대 왜구와의 전투 기사로 보아 늦어도 고려 말 이전에 성곽이 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라가야에 의해 축성되어 여항산성(艅航山城)과 함께 함안 지역 서쪽 경계를 방어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고려 시대에는 입보용 산성으로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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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와 내곡리 일대에 있는 산.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예로부터 봉화산(烽火山)이라고 불리었으며 봉곡뒷산, 감현뒷산 또는 파봉산, 파산이라고도 부른다. 봉화산[649m]은 산정이 비교적 험준하고 산기슭도 급경사를 이룬다. 산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는 진동만과 대현관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함안 성점산성[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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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서원. 상봉 서원(祥鳳書院)은 독오당(獨梧堂)황협(黃悏)[1606~1686], 퇴휴당(退休堂)황열(黃悅)[1616~1681] 등의 8현(賢)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한 서원이다. 황협은 고려회산 부원군(檜山府院君)황석기(黃石奇)의 12세손으로 자(字)는 낙부(樂夫)이며 본관(本貫)은 창원이다. 11세에 두견시(杜鵑詩)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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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서원. 상봉 서원(祥鳳書院)은 독오당(獨梧堂)황협(黃悏)[1606~1686], 퇴휴당(退休堂)황열(黃悅)[1616~1681] 등의 8현(賢)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한 서원이다. 황협은 고려회산 부원군(檜山府院君)황석기(黃石奇)의 12세손으로 자(字)는 낙부(樂夫)이며 본관(本貫)은 창원이다. 11세에 두견시(杜鵑詩)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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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함안의 세거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초기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조선 중기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와 매죽헌(梅竹軒)이명호(李明怘)의 「중수 향안 서(重修鄕案序)」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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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관직에서 물러난 조송하(趙松河)가 울창한 숲과 노송(老松), 그리고 앞의 하천이 흐르는 모습을 보고 경치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현 송정(松汀) 마을 공동 우물터 위에 정착하여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정착 후 조송하는 학문에 전력하면서 후배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조송하의 지도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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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창공·안창렴과 안관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고려 시대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안창공(安昌恭)[1491~1534]·안창렴(安昌廉)과 안관(安灌)[1491~1553]을 입향조로 하고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이를 '흥녕 안씨(興寧安氏)'라고도 한다. 오늘날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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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 시대 옛 지명. 가야 시기 함안의 국명은 기록에 따라 다양한데, 『삼국유사(三國遺事)』 오가야 조에 나오는 아라가야(阿羅伽耶)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 『삼국유사』에 아야가야(阿耶伽耶),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아시량국(阿尸良國)·아나가야(阿那加耶), 『삼국사기』 열전에 아라국(阿羅國), 『삼국지(三國志)』에 안야국(安邪國), 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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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손헌(巽軒). 고려 대장군 안방걸(安邦傑)의 12세손이다.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낸 안수(安綏)가 함안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후 성균관 생원이었던 졸암(拙庵)안여거(安汝居)가 칠원면 영동[현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으로 이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용와(慵窩)안경직(安景稷)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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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예숙(禮叔), 호는 약재(約齋). 시조는 고려 상장군 안방걸(安邦傑)이며, 입향조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안수(安綏)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원중(安源重)이고, 할아버지는 안효우(安孝祐)이다. 아버지는 안기원(安冀遠)인데 학행(學行)으로 존경을 받았다. 어머니는 박태형(朴泰亨)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안종화(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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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어변갑(魚變甲)[1381~1435]은 함종 어씨(咸從魚氏) 중흥조로 일컬어진다.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자선(子先), 호는 면곡(綿谷). 시조는 어화인(魚化仁)으로, 고려명종 때 중국남송에서 동래(東來)하여 평안도 함종현(咸從縣)을 세거지를 삼았다. 그 후 고조할아버지 어준량(魚遵亮)이 진주로 이거하였다. 아버지 어연(魚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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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만종(萬從), 호는 구천(龜川). 시조는 고려명종 때 호장 동정(戶長同正)을 지낸 어화인(魚化仁)이다. 할아버지는 함안 입향조 월정(月亭)어연(魚淵)이다. 아버지는 조선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명신이자 학자인 면곡(綿谷)어변갑(魚變甲)이고, 어머니는 고려공민왕 때 보문각 직제학을 지낸 성사제(成思齊)의 딸 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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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함안 지역은 경상남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면서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두 강의 유역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서 함안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였다. 함안 지역에서 사람이 산 흔적은 구석기 시대부터 있다. 2003년 칠원 용산리와 가야 도항리 일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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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의 교통로상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고려 성종 대에 역참제가 구체화되어 전국 22도(道) 525개소에 역(驛)이 만들어졌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는 모든 역승(驛丞)이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다. 역은 주로 중앙과 지방 사이의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물자를 운송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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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윤수(尹秀)이고, 어머니는 밀직부사를 역임한 박부(朴琈)의 딸 무안 박씨(務安朴氏)이다. 형은 윤길손(尹吉孫)으로 충선왕(忠宣王) 때 상호군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윤환(尹桓), 윤자(尹樜), 윤장(尹樟), 윤화(尹樺), 윤공(尹椌)인데, 윤환은 공민왕(恭愍王) 때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 윤길보(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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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무신. 윤자당(尹子當)[?~1422]은 고려 후기 벼슬길에 나아가 조선 건국 후 병조 전서(兵曹典書)를 역임하던 중 1400년(정종 2) 발생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 4등에 봉해졌다. 태종 대에는 경상도 병마도절제사 등 외직을 역임하면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세종 초에는 하성절사(賀聖節使) 등을 역임하며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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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고위 관료이자 공신. 윤환(尹桓)[?∼1387]은 고려충숙왕 대부터 우왕 대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을 섬겼고, 찬성사, 좌정승, 문하시중 등 고위직을 역임하는 한편 두 차례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고향 칠원에 큰 기근이 일어나자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빈민 구제에 힘썼다. 본관은 칠원(漆原). 할아버지는 고려충렬왕 때 군부판서(軍簿判書)를 역임한 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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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이방실(李芳實)[? ~ 1362]은 고려공민왕 대 무신으로 대호군, 추밀원 부사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의 제1차 침입에서 홍건적을 격퇴하여 공을 세웠고, 1361년의 2차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었으나 총병관(摠兵官)인 정세운(鄭世雲)·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 등과 함께 20만 대병으로 적을 대파하고 개경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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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공직(孔直), 호는 쌍봉(雙峯).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허겸(李許謙)이다. 이허겸의 17세손인 경상 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함안 평광(平廣)[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 터를 정해 입향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관(李慣)이고, 할아버지는 이호맹(李虎孟)이다. 아버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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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공직(孔直), 호는 쌍봉(雙峯).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허겸(李許謙)이다. 이허겸의 17세손인 경상 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함안 평광(平廣)[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 터를 정해 입향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관(李慣)이고, 할아버지는 이호맹(李虎孟)이다. 아버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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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사징(士澄), 호는 효산(曉山). 모은(茅隱)이오(李午)가 고려 멸망 후 함안군 모곡리에 은거하면서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대대로 함안에 살게 되었다. 고조할아버지 이두망(李斗望)은 효행으로 사헌부 감찰에 추증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시징(李時徵)이고, 할아버지는 이위신(李緯臣)이다. 아버지는 이유환(李有煥)이고,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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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 은거한 학자. 이오(李午)는 고려 왕조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킬 뜻을 드러낸 후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본관은 재령(載寧). 호는 모은(茅隱). 할아버지는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이소봉(李小鳳)이고, 아버지은 종부령(宗簿令)을 지낸 이일선(李日善)이다. 부인은 전적을 지낸 남의(南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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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칭을 시조로 하고, 이오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황해도 재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이를 '안릉 이씨(安陵李氏)'라고도 한다. 2000년도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국 가구 수는 1만 6000여 호이며, 종원은 약 5만 여 명이다. 이 중 약 80% 이상이 함안에 입향한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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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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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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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년에 편찬된 현존 최고의 함안 읍지. 『함주지(咸州誌)』는 현존하는 수많은 읍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최고의 읍지이다. 함안 군수 한강(寒岡)정구(鄭逑)와 함안의 재지 사족들이 함께 편찬한 『함주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체제를 계승 발전시켜, 보다 풍부한 지역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16세기 이후 편찬된 읍지들은 거의 『함주지』의 체제를 따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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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석여(錫汝), 호는 신산(信山). 시조는 고려 개국 벽상 공신(開國壁上功臣) 대장군 조정(趙鼎)이며, 조선단종조 생육신 어계(漁溪)조려(趙旅)는 드러난 조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증린(趙增麟)이고, 할아버지는 괴재(槐齋)조진탁(趙鎭卓)이다. 아버지는 죽양(竹陽)조필호(趙弼浩)이며, 어머니는 안양(安洋)의 딸 순흥 안씨(順興安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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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열(趙悅)은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면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과 교유하였고, 고려 말 벼슬을 버리고 함안으로 낙향하였다. 조선 건국 후 출사를 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금은(琴隱). 증조할아버지는 삼사 우윤을 지낸 조희(趙禧)이고, 할아버지는 조지흥(趙之興)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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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열(趙悅)은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면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과 교유하였고, 고려 말 벼슬을 버리고 함안으로 낙향하였다. 조선 건국 후 출사를 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금은(琴隱). 증조할아버지는 삼사 우윤을 지낸 조희(趙禧)이고, 할아버지는 조지흥(趙之興)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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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이(趙彛)는 일찍이 중이 되었으나 환속하여 문과에 급제하였다. 원나라에 가서 황제가 거처하는 곳을 출입하면서 일본을 회유하는 데에 고려를 앞세울 것을 종용하여 고려의 처지를 어렵게 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초명은 인여(藺如). 조이는 한때 승려로 활동하다 환속한 다음 과거 공부를 해서 진사에 급제하였다. 뒤에 나라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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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주택과 관련한 생활문화. 주생활은 함안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택과 관련한 생활문화를 의미한다. 전통 주택의 배치와 구조는 신분과 경제적 능력, 지역에 따른 주거 형태와 재료 등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신분과 계층에 따라서 상류층 주택과 서민층 주택으로 구분되며, 주택의 형태와 재료에 따라서는 기와집, 초가집 등으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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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주택과 관련한 생활문화. 주생활은 함안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택과 관련한 생활문화를 의미한다. 전통 주택의 배치와 구조는 신분과 경제적 능력, 지역에 따른 주거 형태와 재료 등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신분과 계층에 따라서 상류층 주택과 서민층 주택으로 구분되며, 주택의 형태와 재료에 따라서는 기와집, 초가집 등으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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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사람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은 부계(父系)의 혈족들이 모둠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촌(同姓村)', '동족 부락', '동족 마을', '동성 마을' 등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대체로 함안군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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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사람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은 부계(父系)의 혈족들이 모둠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촌(同姓村)', '동족 부락', '동족 마을', '동성 마을' 등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대체로 함안군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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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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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전근대 함안과 칠원의 충신 인물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관찬 지리서와 두 지역의 각종 '읍지(邑誌)'의 인물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함주지(咸州誌)』[1587]에서부터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나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1899]에 이르기까지 함안 관련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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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혼이 흐르는 역수의 땅 함안에서 불의에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함안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함안은 예로부터 충성스럽고 절개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고장이다. 조선 왕조를 부정했던 조순(趙純), 학자 모은(茅隱)이오(李午)가 있으며,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했던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1420∼1489]도 함안 사람이다. 박한주(朴漢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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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과 칠북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칠원현(漆原縣)은 고려 시대의 행정 명칭으로 통일 신라 시대의 칠제현(漆隄縣)이 개칭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물계자전에는 칠포국(柒浦國)으로 나타나는데, 포상팔국(浦上八國) 중의 하나이었다. 남산 신성 비문(南山新城碑文)에는 칠토군(柒吐郡)으로 나온다. 940년(태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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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이 757년 지방 9개 주의 명칭을 비롯한 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칠토현(漆吐縣)을 칠제현(漆隄縣)으로 바꾸었다. 군현 명칭의 변경은 지방에 대한 중앙 집권적 통치의 강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칠원현으로 개칭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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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칠토현(漆吐縣)은 양주(良州) 의안군(義安郡) 칠제현(漆隄縣)의 옛 지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물계자전에서는 칠포국(柒浦國)으로 포상팔국(浦上八國) 중의 하나에 속하였다. 남산 신성 비문(南山新城碑文)에는 칠토군(柒吐郡)으로 나온다. 삼한 시기에는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칠포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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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1677년(숙종 3) 효성이 지극한 한극검(韓克儉)은 병중에 있는 아버지가 겨울에 생 대추를 먹고 싶어하자 잎이 없는 대추나무 아래에서 3일간 기도한 끝에, 지극한 효심에 감동하여 대추가 열릴 만큼 효성이 깊었다고 한다. 한극검 정려각(韓克儉旌閭閣)은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 윤외 마을 남쪽에 위치한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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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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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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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한문을 이용해 지어졌던 시. 조선 건국부터 임진왜란까지의 기간에 해당되며, 이 시기 함안 지역 한시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삶의 태도가 분명한 고려의 망국지신(亡國之臣)들이 함안으로 은거함으로써 활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에서 생장한 그들의 후손들은 곧장 과거에 응하고 관계에 진출함으로써 사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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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형성된 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는 성균관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고려동을 택하여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고려동 유적지는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다. 이오는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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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돈을 시조로 하고 함안을 본관으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윤씨의 시조는 고려원종(元宗) 때 함안백(咸安伯)에 봉해진 윤돈(尹敦)이다. 큰 아들 윤희보(尹希甫)가 함안에 정착한 후 그의 후손들이 윤돈을 시조로 삼고 함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함안 윤씨의 시조 윤돈의 할아버지는 윤위(尹威)이다. 파평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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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이씨는 이상(李尙)을 시조로 하고 고려조부터 함안에 토착하여 대대로 살아온 성씨이다. 이를 '파산 이씨(巴山李氏)'라고도 한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공통으로 이씨·조씨(趙氏)·채씨·윤씨·유씨(劉氏)·정씨(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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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조씨는 시조 조정(趙鼎) 이후로 함안에 정착하여 대를 이어 살아서 함안 지역 최대의 성족(盛族)으로 발전한 성씨이다. 이를 '파산 조씨(巴山趙氏)' 라고도 한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함안 조씨의 후손은 전국에 총 12만 61가구에 38만 5715명으로 집계된다. 함안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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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조씨는 시조 조정(趙鼎) 이후로 함안에 정착하여 대를 이어 살아서 함안 지역 최대의 성족(盛族)으로 발전한 성씨이다. 이를 '파산 조씨(巴山趙氏)' 라고도 한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함안 조씨의 후손은 전국에 총 12만 61가구에 38만 5715명으로 집계된다. 함안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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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함안(咸安)은 다 함께 화합하여 안가 태평(安家泰平)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시량군에서 757년 신라경덕왕이 지방 9개 주의 명칭을 비롯한 군현(郡縣)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함안군으로 변경되었다. 군현 명칭을 중국 한자로 변경한 이유는 지방에 대한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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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고려 전기 지방 행정 구역. 함안군의 옛 명칭은 함주(咸州) 이외에 아라가야(阿羅伽耶), 아라국(阿羅國), 안야국(安邪國), 안라(安羅), 전라(前羅), 아량촌(阿良村), 아라라성(阿羅羅城), 금라(金羅), 사라(沙羅) 등이 있다. 가야의 아시량국(阿尸良國)[아라가야·안라국]이었다가, 560년경 신라에 복속되어 아시량군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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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함안 지역에 설치한 관직. 고려 시대에 지방 세력의 통제를 강화하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자사(刺史) 제도를 받아들였다. 자사는 당나라 안사의 난 이후 관찰사·단련사·자사·방어사를 설치하고 외관제(外官制)를 편성할 때 지방에 파견된 관직이다. 983년(성종 23) 12목을 개편하여 12절도사를 두고, 이보다 작은 주군(州郡)에는 도단련사·단련사·자사·방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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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 사회에 있었던 독립적 지방 세력. 호족(豪族)은 신라 하대 이후 진골 귀족이 분열되면서 지방에 성읍(城邑)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성주(城主)·장군(將軍)을 칭하면서 지방을 독립적·반독립적으로 다스리던 지방 세력을 말한다. 호족을 출신별로 보면 해상 세력, 촌주(村主) 출신, 지방관 및 낙향 귀족, 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