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675
한자 廣州 安氏
이칭/별칭 광릉 안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집필자 류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광주(廣州) - 경기도 광주시
입향지 안인촌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대송리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가연리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묘소|세장지 봉산재(蓬山齋)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선왕 마을
성씨 시조 안방걸(安邦傑)
입향 시조 안유(安綏)

[정의]

안방걸을 시조로 하고, 안유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광주 안씨(廣州安氏)는 경기도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태조 때 대장군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삼고 있다. 오늘날 광주 안씨는 모두 함안 입향조 안유(安綏)의 후손들이다. 광주 안씨를 '광릉 안씨(廣陵安氏)'라고도 한다.

[연원]

함안군의 입향조 안유는 시조 안방걸의 13세손이다. 고려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와 영남 안찰사(嶺南按察使)를 역임하였다. 그 현손(玄孫) 안기(安器)는 충선왕과 공양왕대에 걸쳐 이부 상서를 지냈고, 안기의 큰아들 안국주(安國柱)는 공민왕 때 신호위 중랑장(神虎衛中郞將) 겸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역임하였다. 둘째 아들 안성(安省)은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 직학사와 상주 판관을 지냈다. 조선 개국 후 청백리에 뽑히고 전라북도 장수의 용암 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셋째 아들 안몽득(安夢得)은 조선태종 때 생원으로 권농 판사(勸農判事)에 등용되었으며, 사후 함안봉산재(蓬山齋)와 양산(梁山)소계 서원(蘇溪書院)에 배향되었다.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인물 편과 총묘 편(塚墓篇)에 광주 안씨로는 유일하게 광능자(廣陵子)안택(安宅)이 실려 있다. 안택의 아버지는 안용지(安勇智)이며, 할아버지는 안몽득이다. 선대는 경상남도 의령군에 살았으나 안택이 함안군 두곡(杜谷)에 살던 조세번(趙世藩) 딸과 혼인함으로써 의령에서 함안으로 옮겨 와 살았다. 함안여양 서원(廬陽書院)에 배향되었으며, 묘소는 병곡리(竝谷里) 두곡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주 안씨는 크게 여섯으로 분파되었다. 안유의 큰 아들 안정(安禎)을 파조(派祖)로 하는 총랑공파(摠郞公派), 안국주를 파조로 하는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안성을 파조로 하는 사간공파(思簡公派), 안몽득을 파조로 하는 판사공파(判事公派), 안충(安沖)을 파조로 하는 호군공파(護軍公派), 안창(安昌)을 파조로 하는 위위주부공파(衛尉注簿公派) 등이다. 이 중 오늘날 함안에 자손이 세거하고 있는 것은 중랑장공파와 사간공파이다. 안국주의 증손자인 안효문(安孝文)의 사위가 오졸재(迃拙齎)박한주(朴漢柱)[1459∼1504]이며, 졸암(拙菴)안여거(安汝居)의 사위가 신재(愼齋)주세붕(周世鵬)[1495~1554]이다.

[입향 경위]

중시조 안유가 함안 배씨(咸安裵氏) 집안에 장가든 후 함안군 안인촌(安仁村)으로 처음 옮겨 와 살았다. 이후 후손들이 고려 말까지 함안에 거주하다 조선 초기부터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현황]

오늘날 함안에 세거하고 있는 광주 안씨는 입향조 안유의 현손인 안기의 후손들이다. 안기의 세 아들은 안국주·안성·안몽득인데, 이들은 각기 중랑장공파·사간공파·판사공파의 파조이다. 중랑장(中郞將) 안국주의 후손은 법수면 대송리, 군북면 장지리, 칠서면 용성리, 가야읍 가야리 선왕 마을, 여항면 주동리, 군북면 월촌리, 칠북면 가연리영동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이 외에 사간공 안성의 둘째 아들 서령공(署令公) 안철산(安鐵山)의 후손은 대산면에 세거해 오고 있다. 다만 판사공 안몽득의 후손은 양산·울산·경주 등지로 옮겨 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0년도 통계청 인구 조사 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종원 수는 총 1만 3517가구에 4만 3609명이며, 함안에는 216가구에 5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관련 유적]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선왕 마을에 광주 안씨 시조 안방걸 이하 12세까지의 설단(設壇)이 있으며, 봉산재에는 38분 선조의 위패를 모신 안령사(按嶺祠)가 있다. 함안군 법수면 대송리에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 안기와 중랑장 안국주 부자(父子)의 묘소가 있다.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19호로 지정[1982년 11월 9일]된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가 있다. 신재주세붕의 장인 졸암안여거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었다고 전한다. 함안군 법수면 대송리에 있는 함안 대송리 늪지 식물 역시 천연기념물 제346호로 지정[1984년 11월 19일]되어 있다. 광주 안씨가 정착하면서 풍수지리설에 따라 후손의 번창을 위해 보존해 왔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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