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697
한자 尹吉甫
영어공식명칭 Yun Gilb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270년 6월 - 윤길보 낭장으로 삼별초군 격퇴
활동 시기/일시 1309년 4월 - 윤길보 원나라 파견
활동 시기/일시 1309년 10월 - 윤길보 원나라 파견
활동 시기/일시 1320년 6월 - 윤길보 원나라 파견
활동 시기/일시 1332년 2월 - 윤길보 수감
활동 시기/일시 1332년 5월 - 윤길보 석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27년 11월 - 윤길보 검교상호군으로 2등 공신에 봉해짐
출생지 칠원현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칠원
대표 관직 대호군

[정의]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윤수(尹秀)이고, 어머니는 밀직부사를 역임한 박부(朴琈)의 딸 무안 박씨(務安朴氏)이다. 형은 윤길손(尹吉孫)으로 충선왕(忠宣王) 때 상호군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윤환(尹桓), 윤자(尹樜), 윤장(尹樟), 윤화(尹樺), 윤공(尹椌)인데, 윤환은 공민왕(恭愍王) 때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윤길보(尹吉甫)는 칠원현[현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서 태어났다. 무반으로 출신하여 무인 정권 말기 낭장(郎將)으로 활동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배중손(裵仲孫)과 노영희(盧永禧) 등이 주도하는 삼별초 항쟁이 시작되자 낭장으로서 전 중서사인 이숙진(李淑眞)과 함께 노예를 모아 구포(仇浦)[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구하리 일대]에서 삼별초의 일부를 격퇴하는 전공을 세웠다. 삼별초 항쟁 진압 후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자 윤길보는 원나라로 들어가 고려 출신 환관 임바얀투구스[任伯顔禿古思]의 소개로 인종(仁宗)의 태자 시절 그 동궁(東宮)에 출입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당시 원나라에 체류 중이던 충선왕(忠宣王)을 만나 총애를 받고 중랑장(中郎將)이 되었다 곧바로 대장군으로 승진하였다.

윤길보는 충선왕과 충숙왕(忠肅王) 때에 원나라에 왕래하면서 공물을 바치기도 하고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309년(충선왕 1) 4월, 왕이 총애하는 숙비(淑妃)가 충선왕비 순비(順妃)와 갈등을 빚으면서, 숙비가 원나라로 소환될 위기에 빠지자 원나라 태자 인종에게 사정해 구해 줌으로써 더욱 왕의 신임을 얻었다. 그해 10월에는 환관과 동녀를 바치기 위해 원나라에 들어갔으며, 1320년(충숙왕 7) 6월에도 매를 바치기 위해 원나라에 파견되었다. 충선왕이 토번(吐蕃)으로 유배되고 1321년(충숙왕 8) 4월 이후 국왕이 원나라 서울에 억류되어 있는 4년 동안, 윤길보는 충숙왕의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면서 심왕(瀋王) 왕호(王暠)를 옹립하려는 심왕파의 책동을 저지하는 데 공로를 세웠다. 이 공로로 1327년(충숙왕 14) 11월 원나라 억류 시기에 시종했던 신하들에 대한 포상이 있을 때 검교상호군(檢校上護軍)으로서 2등 공신에 봉하여졌다.

충숙왕의 측근 세력이었던 윤길보는 원의 간섭에 따라 충숙왕이 물러나고 충혜왕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충혜왕 지지 세력으로 정치 노선을 전환하였다. 이 때문에 충혜왕이 2년간 재위하다 물러나고 충숙왕이 복위하자 윤석(尹碩) 등 충혜왕의 측근 세력과 함께 체포되어 순군옥(巡軍獄)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수감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1332년(충숙왕 후1) 5월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수감된 지 3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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