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274
한자 驛院
영어공식명칭 Inn for Government Officials or Missionarie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84년 - 역원 폐지
역원 - 경상남도 함안군
제도/ 법령과 제도

[정의]

고려~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의 교통로상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개설]

고려 성종 대에 역참제가 구체화되어 전국 22도(道) 525개소에 역(驛)이 만들어졌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는 모든 역승(驛丞)이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다. 역은 주로 중앙과 지방 사이의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물자를 운송하며,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 및 숙박 편의를 제공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역은 삼국 시대부터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시대에 이르러 초기의 6과(科) 체제에서 중기 이후 22역도(驛道) 체제를 확립하여 제도적인 기틀이 마련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41역도 524속역 체제의 전국적인 역로망이 확립되었다. 역도를 관장하는 찰방역을 중심으로 속역을 두었다.

원(院)은 역과 달리 일반 상인이나 여행자들의 숙식을 위해 설치된 시설로 상업과 민간 교통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이다. 조선 후기에는 상업 발달 등으로 역할이 쇠퇴하거나 혁파되었고 그 기능이 주막, 여점(旅店) 등으로 옮겨 갔다. 지형이나 교통망에 따라 다르지만, 역은 약 11.78㎞[30리]마다, 원은 약 3.93㎞[10리]마다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함안 지역의 역원]

함안군과 칠원현 영내에는 4곳의 역과 9곳의 원이 설치되어 있어 공무를 수행하는 관료나 일반 행인들이 왕래하는 데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였다. 함안군은 군아(郡衙)를 기점으로 동쪽의 창원 경계까지 약 9.81㎞[25리], 서쪽의 진주 경계까지 약 12.17㎞[31리], 남쪽의 진해 경계까지 약 10.6㎞[27리], 북쪽의 의령 경계까지 약 14.92㎞[38리]이었다.

군내에는 2곳의 역이 있었다. 서쪽 진주로 나아가는 길목에 파수역이 있고, 북쪽의 의령으로 가는 데 춘곡역이 있었다. 1587년 편찬된 『함주지(咸州誌)』에는 어속원·월촌원·이음원·태평원·인비원·이현원·우곡원 등 총 7곳의 원명(院名)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757년 『여지도서(輿地圖書)』가 편찬될 때 우곡원은 보이지 않는다. 칠원현은 현아(縣衙)를 기점으로 동쪽의 창원 경계까지 10리, 서쪽의 함안 경계까지 10리, 남쪽의 창원 경계까지 7리[약 2.75㎞], 북쪽의 영산 경계인 멸포까지 30리이다. 군내에는 2곳의 역이 있었다. 북쪽으로는 영포역이 있어 멸포진을 통해 영산으로, 서남쪽에는 창인역이 있어 함안이나 창원의 영내로 갈 수 있었다. 1786년 『칠원현 읍지(漆原縣邑誌)』에는 혜민원·멸포원이 보인다.

[역]

함안군과 칠원현 내의 역은 모두 자여도에 속하였다. 서쪽의 의령지남역과 연결되는 춘곡역은 군아의 서쪽 약 4.32㎞[11리] 우곡(牛谷)에 있었다. 이곳에는 대마(大馬) 1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9필이 있고, 역리(驛吏) 160명, 역노(驛奴) 8명, 역비(驛婢) 2명이 있으며, 위전답 44결 14부가 있었다. 또한 군아 서쪽 상리에 있던 파수역은 남쪽의 진해상령역이나 서쪽 진주로 연결되었다. 이곳에는 대마 1필, 중마 2필, 복마 9필이 있고, 역리 35명, 역노 1명, 역비 1명이 있으며, 위전답이 10결 41부 2속이 있었다. 춘곡역은 역리만도 160명이 될 정도로 경상남도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중요한 역참이었다.

칠원현 서쪽 7리에 위치한 창인역은 남쪽의 창원이나 서쪽의 함안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에는 대마 1필, 기마(騎馬) 2필, 복마 10필이 있고, 역리는 42명이 있으며, 위답전이 22결 73부 9속이 있었다. 또한, 북쪽 21리[약 8.25㎞]에 위치한 영포역은 멸포진을 통해 낙동강을 건너 영산으로, 남쪽의 창인역을 통해 창원과 함안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에는 대마 1필, 기마 2필, 복마 9필이 있고, 역리 28명이 있으며, 위전답이 8결 89부 2속이 있었다. 영포역 인근은 멸포진·우질포진·금포진 등 낙동강 하류의 3개 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역참이었다. 함안 지역에 존속한 역들은 1884년(고종 21) 우정총국의 창설로 역제가 없어지면서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

함안군의 군아 서쪽 27리인 원북촌에는 어속원이 있어 현재 군북면에서 진주시 반성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서쪽 37리[약 14.53㎞]인 월촌에는 월촌원이 있어 함안의 춘곡역이나 파수역에서 의령의 지남역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또한, 군아 남쪽 7리의 상리에는 이음원이 있어 함안면에서 진북면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남쪽 25리[약 9.82㎞]인 대현촌에는 태평원이 있어 함안면에서 창원시 진동면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또한, 군아 동쪽 10리의 안인리에는 인비원이 있어 함안에서 칠원이나 영산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동쪽 22리의 이현에는 이현원이 있어 함안에서 창원의 근주역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원래는 동쪽 20리 안인리에는 우곡원이 있었는데, 이후에 이 원명(院名)은 삭제되고 6곳의 원명만 보인다.

칠원현의 현아 서쪽 2리에 혜민원이 있어 칠원현에서 함안 또는 창원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북쪽 낙동강 변에 있던 멸포원은 함안에서 어령을 넘어오거나 창원에서 영포를 지나 영산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함안 지역 내의 원들은 조선 중기 『함주지』가 편찬될 시기에 이미 소멸되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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