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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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조임도의 시문집.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어릴 적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합천, 청송, 영주, 봉화, 의성, 인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봉화에서 반천(槃泉)김중청(金中淸)에게 수학했으며, 의성에서는 두곡(杜谷)고응척(高應陟)에게 배웠다. 또한 인동으로 옮겨가서는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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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임도가 찬술한 향토 인물 문학 사전.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조선 후기 함안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로 『간송집(澗松集)』,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등을 편찬하였다. 사후에 함안의 송정 서원(松亭書院)에 제향되었다. 『금라전신록』은 조임도가 고려 말의 이방실(李芳實)을 비롯한 함안 지역이 배출한 인물들의 업적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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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임도가 찬술한 향토 인물 문학 사전.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조선 후기 함안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로 『간송집(澗松集)』,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등을 편찬하였다. 사후에 함안의 송정 서원(松亭書院)에 제향되었다. 『금라전신록』은 조임도가 고려 말의 이방실(李芳實)을 비롯한 함안 지역이 배출한 인물들의 업적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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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박도원의 문집. 박도원(朴道元)[1593~1648]의 자는 일지(一之), 호는 쌍악(雙岳) 또는 농은(農隱)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할아버지는 황암(篁嵒)박제인(朴齊仁)이다. 지리산대갈동(大葛洞)에서 태어났다.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조은(釣隱)한몽삼(韓夢參),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와 교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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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종도의 문집.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院北里)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다. 노진(盧禛), 임훈(林薰), 임운(林芸), 김성일(金誠一), 유성룡(柳成龍) 등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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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정의 문집. 안정(安侹)[1574~1636]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자장(子長), 호는 도곡(道谷)이다. 1574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도음(道音) 마을에서 태어났다. 1602년 도곡 정사(道谷精舍)를 짓고 도곡처사(道谷處士)라 자호하였다. 한강(寒岡)정구(鄭逑)에게 수학하였다. 장현광(張顯光), 곽재우(郭再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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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징천의 문집. 조징천(趙徵天)[1609~1660]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낙보(樂甫), 호는 도봉(道峰)이다. 1609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방어산(防禦山) 아래 임동(林洞)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이다. 외숙 조은(釣隱)한몽삼(韓夢參)과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에게 수학하였다. 중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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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선수의 문집. 조선수(趙善秀)[1846~1914]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화언(華彦), 호는 화강(華岡) 또는 동애(東厓)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長浦)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족숙(族叔) 농아(聾啞)조한진(趙漢珍)에게 수학하였고, 1865년 성재(性齋)허전(許傳), 사미헌(四未軒)장복추(張福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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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배양옥의 문집. 배양옥(裵良玉)[1622-1694]의 본관은 분성(盆城)이며, 자는 기지(器之), 호는 사오당(四吾堂)이다. 고조할아버지 배세적(裵世績) 때부터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漆原面) 장암리(藏巖里)에 살았다. 증조할아버지는 배인좌(裵麟佐)이고, 할아버지는 배담(裵湛)이다. 아버지는 유곡(柳谷)배응철(裵應哲), 어머니는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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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주맹헌의 문집. 주맹헌(周孟獻)[1617~1703]의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여택(汝宅), 호는 수구재(守口齋)이다. 1617년 함안군 칠원면 무릉리(武陵里)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곽연(郭硏)에게 배웠고 만년에는 허목(許穆)과 조임도(趙任道)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재(愼齋)주세붕(周世鵬)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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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조씨의 일원인 조용화의 시문집. 조용화(趙鏞和)[1907~1986]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태형(泰亨), 호는 청계(聽溪)이다. 조선 중기 함안에 거주하던 유학자 조임도(趙任道)의 후손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괴진리에서 태어났다. 의령에 거주하다가 김해에 우거하기도 하였다. 묘소는 함안군 송정 뒷산의 해좌 언덕에 있다. 조용화의 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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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박제인의 문집. 박제인(朴齊仁)[1536~161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사(仲思), 호는 황암(篁嵒)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최영경(崔永慶)·조종도(趙宗道)·하항(河沆)·김면(金沔) 등과 교유하였다. 묘소는 칠원현(漆源縣) 구산면(龜山面)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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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옛 이름. 함안군의 옛 지명으로는 금라(金羅) 이외에도 아라가야(阿羅伽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아라국(阿羅國), 안야국(安邪國), 안라(安羅), 전라(前羅), 아량촌(阿良村), 아라라성(阿羅羅城) 등이 있다. 현재의 함안군은 가야의 아시량국[아라가야·안라국]이었다가, 560년경 신라에 복속되어 아시량군이 되었다. 신라경덕왕 대인 7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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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의 옛 이름. 함안군의 옛 지명으로는 금라(金羅) 이외에도 아라가야(阿羅伽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아라국(阿羅國), 안야국(安邪國), 안라(安羅), 전라(前羅), 아량촌(阿良村), 아라라성(阿羅羅城) 등이 있다. 현재의 함안군은 가야의 아시량국[아라가야·안라국]이었다가, 560년경 신라에 복속되어 아시량군이 되었다. 신라경덕왕 대인 7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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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등의 기록물. 함안 지역 사람들이 남긴 기록 유산으로는 문집류, 책판류, 금석문 등이 있다. 문집이나 실기류는 대부분 개인이나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로 그 가운데는 일부 책판이 전해 오는 것들도 있다. 그 외 금석문으로는 개인 묘소의 묘비(墓碑)와 신도비(神道碑) 등이 있으며, 공신 교서 1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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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경유하는 남강 주변에 세워진 누각과 정자,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진 풍류. 남강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계천에서 시작해 진주시를 거쳐 함안군과 의령군의 경계를 따라 흐르다가 낙동강에 합류한다. 남강은 삶의 기본 요소인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에서부터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여가의 장소로서 그 주변을 살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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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높여 지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이를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누정은 풍류, 관망, 휴식을 위해 건립된 것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추모 기념의 목적과 주거, 강학(講學)의 목적으로 건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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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높여 지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이를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누정은 풍류, 관망, 휴식을 위해 건립된 것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추모 기념의 목적과 주거, 강학(講學)의 목적으로 건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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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일지(一之), 호는 쌍악(雙岳)·농은(農隱)·신독재(愼獨齋). 할아버지는 왕자사부(王子師傅)를 지낸 황암(篁嵒)박제인(朴齊仁)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載寧李氏)로, 슬하에 아들 넷을 두었다. 큰아들 박집(朴慹)은 아버지 박도원보다 먼저 죽었고, 둘째 아들 박임(朴恁)은 현령을 지냈으며, 셋째 아들은 박흠(朴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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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서원. 상봉 서원(祥鳳書院)은 독오당(獨梧堂)황협(黃悏)[1606~1686], 퇴휴당(退休堂)황열(黃悅)[1616~1681] 등의 8현(賢)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한 서원이다. 황협은 고려회산 부원군(檜山府院君)황석기(黃石奇)의 12세손으로 자(字)는 낙부(樂夫)이며 본관(本貫)은 창원이다. 11세에 두견시(杜鵑詩)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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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서원. 상봉 서원(祥鳳書院)은 독오당(獨梧堂)황협(黃悏)[1606~1686], 퇴휴당(退休堂)황열(黃悅)[1616~1681] 등의 8현(賢)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한 서원이다. 황협은 고려회산 부원군(檜山府院君)황석기(黃石奇)의 12세손으로 자(字)는 낙부(樂夫)이며 본관(本貫)은 창원이다. 11세에 두견시(杜鵑詩)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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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해 설치한 조선 시대 사립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시대 지방 유림에 의해 설립되어 학문 연구와 선현봉사(先賢奉祀) 및 향촌 자치 기구의 역할을 담당한 사설 중등 유교 교육 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원의 시작은 1543년(중종 38)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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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해 설치한 조선 시대 사립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시대 지방 유림에 의해 설립되어 학문 연구와 선현봉사(先賢奉祀) 및 향촌 자치 기구의 역할을 담당한 사설 중등 유교 교육 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원의 시작은 1543년(중종 38)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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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송정 서원(松亭書院)은 조선 후기인 1721년(경종 1)에 경상도 함안 출신인 조임도(趙任道)[1585∼1664]를 제향하기 위하여 도내의 사림들이 임금에게 상소하여 윤허를 얻어 건립된 서원이다. 조임도는 조선 후기의 학자로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5대손이다. 조임도는 학문이 뛰어나고 효심이 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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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장(子長), 호는 도곡(道谷). 부인은 조역(趙墿)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로,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안수해(安壽海), 둘째 아들은 안수업(安壽嶪), 막내아들은 안수석(安壽石)이며, 사위는 이경번(李景蕃), 조징헌(趙徵獻), 허영(許英)이다. 안정(安侹)[1574~1636]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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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공자를 시조로 하고 있는 전통적인 학문 및 종교. 함안은 지리상 경상도의 남북과 동서가 교류하는 지점으로, 퇴계학파와 남명학파의 학문이 어우러진 곳이다. 1906년 함안군과 칠원현(漆原縣)이 합병되어 이루어진 고을로,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높은 학술적 성취를 이룬 곳이다. 함안은 아라가야(阿羅伽耶)가 건국된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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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경무의 문집. 이경무(李景茂)[1609~1679]의 본관은 여주이며, 자는 여실(汝實), 호는 만묵당(晩默堂)이다. 함안 두곡촌[지금의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경무의 고조할아버지가 함안으로 이주하였고, 아버지 이익형(李益亨)[1573~1633]은 두곡촌에 정착하였는데, 당시 북인 세력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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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양초(養初), 호는 매죽헌(梅竹軒). 고조할아버지는 훈련 봉사(訓鍊奉事)를 지낸 이처인(李處仁)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해남 현감(海南縣監)을 지낸 이순조(李順祖)이며, 할아버지는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인 이사후(李士詡)이다. 아버지는 조식(曺植)과 이황(李滉)에게 수학하고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낸 황곡(篁谷)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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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월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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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지어진 한시 중에 제목를 내어서 지은 작품. 제영(題詠)은 함안 지역에서 제목을 붙여 시를 읊은 한시(漢詩) 또는 그런 시가를 말한다. 함안 지역의 제영은 특정 인물, 수신(修身)과 도리(道理), 누정, 산천 등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다. 특정 인물을 읊은 시에는 이길, 이정(李瀞), 안희(安憙), 조려(趙旅)[1420∼1489], 하옥, 어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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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화언(華彦), 호는 화강(華岡)·동애(東厓). 첫 번째 부인은 안효연(安孝淵)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로 자식이 없었다. 두 번째 부인은 전수록(全壽祿)의 딸 경산 전씨(慶山全氏)로 슬하에 아들 다섯 명을 두었다. 큰아들은 조성국(趙性國), 둘째 아들은 조성숙(趙性宿), 셋째 아들은 조성교(趙性敎), 넷째 아들은 조성집(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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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치원(致遠)·덕용(德勇), 호는 간송(澗松).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도시 첨정(司䆃寺僉正)을 지낸 입암(立巖)조식(趙埴)이며,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유상린(柳祥麟)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는 삼종형(三從兄)이다. 부인은 노파(蘆坡)이흘(李屹)의 딸 벽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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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치원(致遠)·덕용(德勇), 호는 간송(澗松).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도시 첨정(司䆃寺僉正)을 지낸 입암(立巖)조식(趙埴)이며,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유상린(柳祥麟)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는 삼종형(三從兄)이다. 부인은 노파(蘆坡)이흘(李屹)의 딸 벽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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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임도의 『간송 문집』과 『금라전신록』 책판. 『간송 문집(澗松文集)』 책판 및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책판은 조선 후기 유학자 조임도(趙任道)[1585~1664]의 저술인 『간송 문집』과 『금라전신록』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이다. 조임도는 조선 후기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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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임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덕용(德勇), 호는 간송당(澗松堂)이다. 1604년(선조 37) 향시에 합격하였고, 1605년 21세에 『관규 쇄록(管窺鎖錄)』을 저술하였다. 1608년 「거상 대절(居喪大節)」 10조(十條)를 써서 자손들이 교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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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함안을 본관으로 하여 함안에 세거하며 오랫동안 함안을 대표하는 제일의 성족이 되어 왔다. 조선 전기에 이르러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손자 내헌(耐軒)조연(趙淵)이 청송으로 장가를 들어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청송에도 함안 조씨 일파가 세거하게 되었다. 조연은 1562년(명종 17) 함안으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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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여택(汝宅), 호는 수구재(守口齋)인데 ‘수구여병(守口如甁)’의 의미로 자호하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이조 참판에 추증된 주문보(周文俌) 때부터 함안군 칠원읍으로 이주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재(愼齋)주세붕(周世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구봉(龜峯)주박(周博)이며,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연헌(蓮軒)주낙창(周樂昌)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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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화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묘비. 주맹헌(周孟獻)[1617~1730]은 자는 여택(汝宅), 호(號)는 수구재(守口齋)이다. 주세붕(周世鵬)의 손자이다. 일찍이 곽연(郭硏)에게 수학하였고 만년에는 조임도(趙任道)의 문하에서 종학하였다. 병란(兵亂)으로 허물어진 신재(愼齋)의 원묘(院廟)를 중건하였는데, 1676년(숙종 2) 덕연(德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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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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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한문으로 된 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함안 지역의 한문학(漢文學)은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할 계기가 마련된다. 고려 왕조가 망하자 금은(琴隱)조열(趙悅)과 모은(茅隱)이오(李午) 등은 경상남도 함안 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함안 지역에 학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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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한문을 이용해 지어졌던 시. 조선 건국부터 임진왜란까지의 기간에 해당되며, 이 시기 함안 지역 한시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삶의 태도가 분명한 고려의 망국지신(亡國之臣)들이 함안으로 은거함으로써 활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에서 생장한 그들의 후손들은 곧장 과거에 응하고 관계에 진출함으로써 사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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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조씨는 시조 조정(趙鼎) 이후로 함안에 정착하여 대를 이어 살아서 함안 지역 최대의 성족(盛族)으로 발전한 성씨이다. 이를 '파산 조씨(巴山趙氏)' 라고도 한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함안 조씨의 후손은 전국에 총 12만 61가구에 38만 5715명으로 집계된다. 함안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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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토착 세거 성씨. 함안 조씨는 시조 조정(趙鼎) 이후로 함안에 정착하여 대를 이어 살아서 함안 지역 최대의 성족(盛族)으로 발전한 성씨이다. 이를 '파산 조씨(巴山趙氏)' 라고도 한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함안 조씨의 후손은 전국에 총 12만 61가구에 38만 5715명으로 집계된다. 함안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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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청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청계 서원(淸溪書院)은 경상남도 함안군무릉산(武陵山) 서쪽 10리[3.93㎞]의 칠서면 청계리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이삼로(李三老)[1560∼1645]와 이삼로의 조카인 이시분(李時馩)의 충정과 행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1670년(현종 11)에 창건된 서원이다. 장석영(張錫英)이 기록한 『청계 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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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청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청계 서원(淸溪書院)은 경상남도 함안군무릉산(武陵山) 서쪽 10리[3.93㎞]의 칠서면 청계리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이삼로(李三老)[1560∼1645]와 이삼로의 조카인 이시분(李時馩)의 충정과 행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1670년(현종 11)에 창건된 서원이다. 장석영(張錫英)이 기록한 『청계 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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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합강정(合江亭)은 조선 후기 문관이며 학자인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수학하던 정자이다. 조임도는 인조 때 공릉 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647년 대군 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어 창녕까지 가다 역시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 공조 좌랑으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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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합강정(合江亭)은 조선 후기 문관이며 학자인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수학하던 정자이다. 조임도는 인조 때 공릉 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647년 대군 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어 창녕까지 가다 역시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 공조 좌랑으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