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345
한자 題詠
영어공식명칭 Composing and Reciting Poetry Whose Subjects were Beautiful Scenery and Traditional Landscapes in Hama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집필자 정정헌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지어진 한시 중에 제목를 내어서 지은 작품.

[개설]

제영(題詠)은 함안 지역에서 제목을 붙여 시를 읊은 한시(漢詩) 또는 그런 시가를 말한다. 함안 지역의 제영은 특정 인물, 수신(修身)과 도리(道理), 누정, 산천 등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다.

[인물을 읊은 시]

특정 인물을 읊은 시에는 이길, 이정(李瀞), 안희(安憙), 조려(趙旅)[1420∼1489], 하옥, 어변갑(魚變甲)[1381∼1435], 조식(曺植), 조지(趙址) 등의 작품이 보인다. 그중 오일덕(吳一德)의 「차남구정재찬영길주서운(次南龜亭在讚詠吉注書韻)」은 구정(龜亭)남재(南在)[1351~1419]가 길 주서(吉注書)[길재]를 찬양한 시에 차운하여 쓴 시이다.

오애길부자(吾愛吉夫子)[나는 길 선생을 사랑하노니]

충성관후생(忠誠冠後生)[그 충성 후생에 으뜸이로다]

연하수회적(煙霞雖晦迹)[안개와 노을 속에 흔적을 숨겼어도]

진세기류명(塵世幾流名)[속세에 얼마나 이름을 남겼던고]

송경문려정(松徑門閭靜)[솔숲 오솔길에 마을은 고요하고]

균헌원우청(筠軒院宇淸)[대줄기 처마에 닿은 집은 맑아라]

고반성독락(考槃成獨樂)[은거지에 홀로 즐거움 누리니]

수굴석인정(誰屈碩人情)[우뚝한 그 뜻을 누가 꺾으랴]

오일덕은 고려 말인 1390년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뒤에 대사성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야은(冶隱)길재(吉再)[1353∼1419]와는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오일덕이 남재의 시에 차운하여 길재를 기린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미 길재의 덕을 기리는 시가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길재는 자연 속에 은둔하면서도 마치 소나무나 대나무와 같이 변함없는 절의를 지켰으니, 진정으로 홀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어느 누구도 그의 기개를 꺾을 수 없는 대인이라 읊고 있는 것이다.

[누정과 산천을 읊은 시]

산천이나 누정을 읊은 시에는 이계린(李季疄)[1401~1455], 허엽(許曄)[1517~1580], 정사룡(鄭士龍)[1491∼1570], 어득강(魚得江)[1470 ~1550], 주세붕(周世鵬)[1495~1554], 이황(李滉)[1501~1570], 박덕손(朴德孫), 오석복(吳碩福), 조려, 이길, 이용운, 이익형, 문학용, 허전(許傳)[1797∼1886], 조성원(趙性源)[1838~1891], 홍기호, 이익규 등 많은 학자들의 시편이 보인다.

우리 선인들은 훌륭한 인물은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난다고 여겨 산천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그저 산천의 기운으로 출세하자는 발복(發福)의 욕망이 아니라, 산천의 모습과 현상을 통해서 우주와 인생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지세(自然地勢)와 더불어 거기에 알맞게 배치한 누정과 재실, 서원 등은 학문과 풍류의 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산천과 누정을 노래한 한시는 수없이 많은데, 그 속에는 삶의 철학과 가치가 녹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청범루(淸範樓)에 대한 제영은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이 지어졌으며, 주제도 다양하다. 그중에 호음(湖陰)정사룡이 함안을 지나는 길에 읊은 것으로 보이는 「청범루 제영(淸範樓題詠)」이 있다.

공성적적리인희(空城寂寂吏人稀)[텅 빈 성은 적적하고 아전들도 드문데]

권객귀래엽만의(倦客歸來葉滿衣)[고달픈 손 돌아드니 낙엽만 옷에 가득]

초무등화구렴좌(悄無燈火鉤簾坐)[등불 없이 물끄러미 발을 걷고 앉았는데]

일점잔형투만비(一點殘螢透幔飛)[깜박깜박 반딧불만 장막으로 날아드네]

[이하 생략]

또한,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에 있는 낙천정(樂天亭)을 노래한 것으로 이용운의 한시가 전한다.

부지부귀부지빈(不知富貴不知貧)[부귀도 내 모르고 빈천도 모를네라]

유득인간백발신(惟得人間白髮新)[오로지 인간 세상 백발만 새로워라]

만사무심종차로(萬事無心從此老)[온갖 일 무심하여 이렇게 늙어가니]

악천정반일우인(樂天亭畔一愚人)[낙천정 가에 사는 어리숙한 나로다]

이용운은 문학으로 널리 추종되었고, 조임도(趙任道)[1585~1664]와도 서로 학문으로 돕던 사이였다. 나아가 영달을 구하지 않고 향리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살았다. 부귀와 빈천도 상관 않고, 오로지 한가로이 늙어 가는 은일자의 전형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윤리를 읊은 시]

선비 학자들에게 나아가 정치에 종사하는 것과 물러나 산림에서 처사로 지내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몸가짐이라고 한다면, 나아가 임금을 섬기고 물러나 어버이를 받드는 일은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갈등이다. 어변갑의 「제지포가벽(題池浦家壁)[지포의 집 벽에 붙인 시]」은 이러한 심정을 잘 담고 있다.

사병귀래일실유(謝病歸來一室幽)[병들어 돌아왔네 그윽한 집 한 칸]

황량초수고지두(荒涼草樹古池頭)[초목만 황량해라 그 옛날 못 언저리]

약여기피공명자(若余豈避功名者)[나 같은 이 어찌 공명을 피해서랴]

지위쌍친불원유(祗爲雙親不遠遊)[양친이 계시매 멀리 아니 다니려네]

또 임진왜란 이후에 함안의 대표적인 학자인 조임도의 「삼강구절구(三綱九絶句)」는 충·효·절의 덕목별로 세 작품을 쓰고, 작품마다 대상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곁들임으로써 문학성과 함께 교훈성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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