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95
한자 咸安城山山城
영어공식명칭 Seongsan Mountain Fortress, Haman
이칭/별칭 조남산성,성산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산1657|함안면 괴산리 산784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함안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함안 성산산성 사적 재지정
현 소재지 함안 성산산성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산1657
현 소재지 함안 성산산성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산784
성격 산성|관방 유적
양식 테뫼식|석성
크기(높이,길이,둘레) 1.4㎞[둘레]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함안면 괴산리에 걸쳐 있는 신라 시대의 산성.

[건립 경위]

함안 성산산성(咸安城山山城)은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17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6세기 중반에 신라에 의해 축성된 함안 지역의 치소성으로 밝혀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에서 성산에 가야국 구허(舊墟)가 위치하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아라가야 시기에 아라가야와 관련된 유적이 입지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위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산1657번지함안면 괴산리 산784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함안군 가야읍 소재지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2.5㎞ 떨어진 조남산[139.4m]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다. 북쪽으로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末伊山古墳群)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성의 남쪽 아래에는 함안 대산리 석조 삼존상(咸安大山里石造三尊像)[보물 제71호] 등의 문화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에서는 북쪽으로 넓은 평야 지대와 함안 말이산 고분군·봉산산성(蓬山山城), 그리고 구전하는 아라 왕궁 터가 한눈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동지산성과 함안 문암산성(咸安門巖山城), 남쪽으로는 함안 성점산성(咸安城岾山城)함안읍성(咸安邑城)함안면 전체가 조망된다.

[형태]

조남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1.4㎞ 정도이며 평면 형태는 말각 사각형에 가깝다. 성벽은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기 때문에 북벽·서벽·남벽 순으로 레벨이 높고, 동벽은 산의 낮은 부분을 가로질러 쌓았다. 남벽은 내벽과 외벽을 모두 직사각형의 석재를 이용하여 수직으로 정교하게 쌓은 편축식 성벽으로 성벽의 너비는 740㎝이다. 성벽은 원래의 지형을 단상으로 굴착하여 자연 암반을 수평하게 다듬어 기초로 이용하였다. 내벽은 직사각형의 석재를 거의 수직되게 쌓았는데, 빈틈이 없도록 잔돌을 석재 사이에 끼워 견고성을 높였다. 성벽에 쓰인 석재의 크기는 70x30x15㎝ 내외의 점판암 계열의 직사각형 석재가 중심을 이룬다. 수평 줄눈을 맞추어 정연하게 축조하였는데, 성벽 기저부는 이보다 큰 부정형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부속 시설로 성문 2개소와 건물 터 4동, 저수 시설 및 배수로가 조사되었으나 이보다 많은 유구가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황]

함안 성산산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6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토기는 굽다리 접시[고배], 뚜껑, 항아리[호], 이형 토기 등을 비롯한 가야 시대의 토기류가 출토되었으나 유구 내에서는 단각 굽다리 접시 및 찍은 무늬 토기[인화문 토기] 등 6세기 중반경의 유물이 주류를 이룬다. 기와는 귀면와(鬼面瓦), 암키와·수키와와 막새 등이 출토되었으며, 제작 기법으로 보아 7세기 말엽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함안 성산산성가야읍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조남산 정상부를 두른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특히 성 내부 저수 시설에서 다량의 목간(木簡)이 출토되었다.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咸安城山山城出土木簡)은 하물의 꼬리표인 하찰 목간이 다수를 차지하며, 내용은 지명과 인명, 곡물명 등 다양하다. 현재까지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간지나 연호 등이 기록된 것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서풍이나 내용으로 보아 6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함안 성산산성은 신라가 가야 지역을 복속한 후 어떠한 방식으로 지방 지배를 실시하였는지를 알려 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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