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405
한자 鼓鍾山城
영어공식명칭 Gojong Mountain Fortress
이칭/별칭 대산리 산성(代山里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산23-1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고종산성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산23-1
성격 성곽|산성
양식 테뫼식|석성
크기(높이,길이,둘레) 200m[둘레]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건립 경위]

고종산성(鼓鍾山城)은 문헌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무명 성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 고적 조사 보고』에 대산리 산성(代山里山城)으로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문헌 기록으로는 고종산성에 대한 축조 시기를 파악할 수 없으나 산성의 규모나 형태로 보아 삼국 시대 아라가야에 의해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낙동강에서 함안 지역으로 진입하는 적을 차단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경상남도 함안군의 북동쪽에 해당하는 대산면 평림리 산23-1번지에 위치한다. 함안군 대산면~칠원읍~가야읍으로 연결되는 삼거리 북동쪽의 고종산[131.5m] 정선부와 9부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이곳은 대산 평야의 남동쪽 끝부분에 해당하는데, 산성은 낙동강을 비롯한 주변을 조망하기 유리한 요해지이다. 대산 평야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여 대산 평야와 남강, 그리고 건너편의 의령군, 남동쪽으로 안곡산성(安谷山城), 서쪽은 산지로 인해 시야가 부분적으로 가리지만 산 너머 멀리 함안군 법수면 일대의 평야 지대 일부가 조망된다.

[형태]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말각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둘레는 200m 정도로 소규모이다. 성벽 중 북벽은 정선부를, 그 이외는 9부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다. 외부의 지형은 봉우리의 북쪽을 제외하고 급경사를 이룬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어 정확한 축조 수법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남서쪽에서 부분적으로 외벽이 확인된다. 성벽 전 구간에 회곽도가 잔존하는 것으로 보아 편축식 성벽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너비는 3~6m 정도로 좁은 편이다. 남서벽은 고종산의 비탈에서 5.6m 지점에서 경사면이 시작되며, 경사면에서 1.8m 지점에서 외벽으로 추정되는 석축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30~60㎝ 내외의 할석으로 허튼층쌓기에 가깝게 축조하였으며, 면석 사이의 빈틈은 잔돌을 끼워 견고성을 높였다. 면석에 사용된 석재들은 점판암과 안산암이며, 이 중 점판암의 비율이 높다. 이러한 형태의 성벽은 전형적인 신라 산성과는 차이를 보이며, 칠원산성(漆原山城)과 유사하다.

부속 시설로 추정 집수지와 외황이 잔존한다. 다만, 기존의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성 내부에서 다량의 기와편이 채집되었으므로 고종산 정상부에는 건물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집수지는 고종산의 남동쪽 비탈에 위치하며, 규모는 직경 약 12m, 깊이 약 1.6m 정도이다. 집수지 내부에는 직경 2m 정도로 할석 1단을 돌린 부분도 확인된다. 외황은 고종산성의 동북쪽 바깥에서 확인된다. 이 부분은 다른 부분과 달리 성벽 정선부의 가장자리에 성벽을 축조하였으며, 외부로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능선이 돌출되어 있어 성내로 진입하기에 용이한 지점이다. 외황은 성벽 외부의 급경사면 말단부에 능선 진행 방향과 직교하게 설치되었으며, 규모는 길이 10m, 폭 1.5m, 깊이 1m 정도이다.

[현황]

아라가야 향토사 연구회에서 발간한 『안라국 고성』에 항아리편과 큰독[대옹] 저부편, 그리고 백자편이 채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에서 발간한 『경남의 성곽-부산·울산 포함』에 의하면 성 내부 전역에서 기와편들이 다량 채집되었으며, 집수지 내에서 삼국 시대 굽다리 접시[고배]편과 항아리편, 자기편 등이 채집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고종산성은 삼국 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되었고, 고종산 북동쪽 비탈에 위치한 대사리 송라 고분군(大沙里松羅古墳群)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성벽 축조 수법이 전형적인 신라 산성과 차이를 보인다는 점과 내부에서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점 등으로 보아 고종산성은 삼국 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되었으며, 축조 주체는 신라가 아닌 아라가야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라가야 산성의 축조 수법이나 방어 체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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