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406
한자 蓬山山城
영어공식명칭 Bongsan Mountain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 산74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봉산산성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 산74
성격 성곽|산성
양식 테뫼식|석성
크기(높이,길이,둘레) 1,362m[외성 둘레]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개설]

[건립 경위]

봉산산성(蓬山山城)은 함안 포덕산성(咸安飽德山城) 및 여항산성(艅航山城)과 연계하여 함안 지역을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세 봉우리를 독립적으로 두르는 내성은 아라가야에 의해 축조되었으나 외성의 축조 시기는 알 수 없다. 삼봉산의 북쪽 능선에 외성의 성벽을 쌓지 않았다는 점과 성벽의 축조 수법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내성과 외성의 축조 시기는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함주지(咸州誌)』에서도 봉산산성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므로 일찍이 성곽의 기능을 상실하고 함안 주민들에게조차 망각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위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 산74번지에 위치한다. 함안군 가야읍에서 북서쪽에 위치하는 삼봉산 세 봉우리를 독립적으로 두르는 내성과 남쪽 비탈을 두르는 외성으로 이루어졌다. 내성1에서는 동쪽으로 마산 및 창원 지역에서 들어오는 신당 고개, 남쪽으로 남강 너머 의령군 방면, 서쪽으로 진주시 지수면과 경계를 이루는 함안군 군북면방어산성(防禦山城) 등과 더불어 가야 시가지 주변에 위치하는 모든 산성들을 볼 수 있어 조망이 탁월하다.

내성2의 조망권은 내성1과 동일하다. 내성2가 자리한 중봉 중앙 부분에 암괴들이 돌출되어 있는데, 암괴의 서쪽 면에 '김언수 장군 임란 전투 유적지 희복 항호 상수 각'이란 국문 비석이 각자되어 있다. 내성3의 조망권은 내성2와 유사하지만 함안군 군북면 방면과 방어산성, 의령군 일대를 조망하기에 유리하다.

[형태]

내성1은 삼봉산의 가장 동쪽에 솟은 봉우리[271m] 정선부를 따라 축성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약 250m 정도이다. 성벽은 봉우리 정선부를 따라 축조되었다. 성벽 외부의 붕괴된 부분으로 보아 석성이며, 내부에 회곽도가 조성되어 있으므로 편축식 성벽으로 축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외벽은 40~70x10~40㎝ 내외의 [장]방형 및 부정형 할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빈틈은 잔돌을 끼워 견고성을 높였다. 부정형 할석의 비율이 높아 전체적으로 조잡하다.

내성2는 중앙 봉우리 정선부[278m]나 9부 능선을 따라 축성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산봉우리 곳곳에 암괴가 노두(露頭)되어 있으며, 산 정상부는 비교적 완만한 평탄지를 이룬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약 320m 정도이다. 내성3은 삼봉산의 가장 서쪽에 솟은 봉우리[302m]의 정선부 및 9부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340m 정도이다. 성벽의 외벽 면석에 사용된 부정형 할석의 비율 높은 편이지만 동봉과 중봉에 축조된 산성들에 비해서는 비율이 낮다. 외성은 내성 중 동쪽 봉우리에서 동쪽의 능선과 남쪽 비탈을 따라 축조된 석축 산성이며, 서벽은 성벽을 축조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 소규모의 계곡이 확인되지만 삼국 시대의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과는 차이를 보인다. 평면 형태는 북쪽이 넓은 사다리꼴이며, 둘레는 1,362m이다. 성 내부는 급경사를 이루므로 건물 터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하다. 성벽은 내성과 달리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현황]

봉산산성은 삼봉산의 동봉과 서봉 정상부를 두르는 내성과 남쪽 비탈을 가로지르는 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 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세 봉우리를 독립적으로 두르는 내성과 남쪽 비탈을 두르는 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성으로 밝혀졌다.

[의의와 평가]

봉산산성은 삼봉산 정상의 세 봉우리를 독립적으로 두르는 내성과 남쪽 비탈을 가로지르는 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성이다. 성의 내성은 아라가야에 의해서 축조된 것이 분명하지만 외성은 시기를 단언하기 힘들다. 특히, 봉산산성함안 포덕산성여항산성과 연계하면 함안 지역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가가야의 방어 체계에서 중심 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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