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031
한자 佛敎
영어공식명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집필자 배상현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활동하고 있는 종교.

[개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현재 법등을 밝히고 있는 사찰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원효암(元曉庵)장춘사(長春寺) 등을 꼽을 수 있다. 방어산(防禦山)에 소재한 함안 방어산 마애 약사여래 삼존 입상(咸安防禦山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보물 제159호]은 신라 하대 이 지역 사람들이 신행한 불교 신앙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는 신라 중대에 원효(元曉)[617~686]를 비롯한 고승들의 활동과 더불어 이곳에도 불교가 널리 유행하였음을 알려준다. 고려 시대 함안 지역의 불교 전통은 각지에 소재하는 사찰 터가 말해주고 있다. 강명리, 대산리, 무기리, 월촌리, 하림리 등이 그곳으로, 불상과 불탑 등 유물 또한 다양하여 이 지역의 불교문화를 엿보게 해준다. 하지만 조선의 개창과 더불어 숭유억불의 바람에 드세 지면서 함안의 불교 또한 일정한 퇴조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사, 은적암, 홍성암 등은 그 명맥을 잇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그 수가 증가하여 현재 60여 개의 사찰들이 소재하여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연원]

불교는 삼국 및 가야 시기에 전래된 이래 그 신앙의 중심 공간인 사원(寺院)이 창건되어 지역의 성소(聖所)로서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영향력 또한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력한 가야 제국(加耶諸國) 가운데 하나로 안라국(安羅國)인 함안 지역의 불교 전통 또한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전하는 자료를 통하여 파악 가능한 함안의 불교 전통은 신라원효의 활동과 연계되고 있다. 원효는 모든 만물은 그 시초가 일심(一心)에서 비롯하고 일심으로 돌아온다고 하여 불교 교리의 단순화와 무애(無碍)의 자유정신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교화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누구나 아미타불의 극락세계[淨土(정토)]에 갈 수 있다는 간명한 방법이 제시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 여항산(艅航山) 중턱에 자리한 원효암은 7세기 불교 대중화의 선봉에 섰던 고승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원효암에는 의상대(義湘臺)와 함께 의상(義湘)[625~702]의 일화도 함께 속전한다. 의상이 이곳에 머물다 떠나면서 남긴 지팡이가 자라서 고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비전승으로 사실 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원효암이 의상의 화엄(華嚴) 사상과 교학 불교의 전통을 수용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에까지 그 내용이 전승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변천]

신라 통일기 경상남도 함안의 불교문화를 웅변하는 유적으로 군북면 하림리에 소재한 함안 방어산 마애 약사여래 삼존 입상이 있다. 이 마애불의 원문(願文)에 따르면, 큰 바위에 부모님과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불상을 조성한다는 것이며, 때는 801년(애장왕 원년) 3월이라고 하였다. 불교가 민인(民人)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면서 자연물을 활용해 신앙심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표출되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마애불이었다. 이 마애불은 같은 시기 함안 지역 불교의 대중성을 잘 반영해 준다. 아울러 약합을 들고 있는 주존(主尊)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협시의 월광(月光) 보살과 일광(日光) 보살의 형상을 통하여 민중 불교의 요소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보다 늦은 시기인 신라 하대에 창건되어 현재까지 법등을 이어오고 있는 사찰로는 장춘사가 있다. 장춘사는 832년(흥덕왕 7) 개창한 절로 알려지는데,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초창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왜적들의 노략질로 민생이 곤란하였다고 하고 이들을 물리치는데 무염의 공이 컸으므로, 왕실이 후원하여 창건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염국사는 속성이 김씨, 호가 무량(無量) 혹은 무주(無住)로 신라 하대의 선승(禪僧)으로 여러 지역에 자취를 남긴 고승이었다. 무염국사는 인근의 창원 지역에 소재한 불모산(佛母山)성주사와 성흥사의 창건주로도 알려지며, 신라 하대 선문구산(禪門九山) 가운데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이기도 한 인물이다.

무염의 장춘사 창건이 사실이라면, 신라 하대 무릉산 자락은 선승의 수행처로서도 각광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시 함안 지역에 선불교(禪佛敎)가 유입되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편 창건의 배경이 유사하고 같은 동일의 창건주였다고 한다면 인근 지역인 창원의 성주사나 성흥사와도 사승(寺僧)의 법맥이 상통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외에 신라 통일기 유물로는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함안 백암사 석조 여래 좌상(咸安白岩寺石造如來坐像)[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29호], 외암리 조곡사지 삼층 석탑 등이 있다.

고려 시대는 호국(護國)과 수신(修身)의 가르침으로 불교가 크게 각광을 받았던 시기이다. 따라서 불교 신행의 중심 공간인 사원 또한 사회·경제·문화적으로 그 위상이 유별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개창과 더불어 숭유억불의 정책이 지속되다보니 그 명맥을 잇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유적으로 파악되는 실정이다. 함안 지역의 이 시기 불교문화의 양상을 유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함주지(咸州誌)』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도 함안 지역에는 다수의 불교 사찰이 분포하였다. 여항산 동쪽 기슭의 주리사(主吏寺), 미산 중턱의 미산사(眉山寺), 용화산에 있었던 사자사(獅子寺)와 청송사(靑松寺), 그리고 송방사(松坊寺), 그 외에도 북사(北寺), 쌍안사(雙岸寺) 등이 소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청송사는 낙동강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교통의 용이성으로 인하여 인접 지역민의 신행처로도 각광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폐사가 된 것을 고려 말 칠원 부원군(漆原府院君)윤환(尹桓)이 복구하였다고 한다. 또 윤환의 사후에는 손자가 진영을 모시고 기렸다고 함으로 미루어 칠원 윤씨(漆原尹氏)의 원당(願堂)으로 역할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를 통해서는 심원사(深原寺), 묵사암(墨寺庵), 대사(大寺), 은적암(隱寂庵), 흥성암(興聖庵), 약사암(藥師庵), 중흥사(中興寺) 등이 확인되고 있어 조선 시대 함안의 불교문화를 엿보게 해 준다.

[현황]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다수의 사찰들이 창건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에는 무학사, 관음사, 백암정사, 광법암 등이, 1940년대에는 청용암, 봉암사 등이 건립되어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광복 후에는 이들 사찰 이외에도 일부 폐사가 복원되고 도심의 사찰들이 늘어나면서 신도의 숫자 또한 다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20013년 현재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60여 개의 사암이 확인되며, 각 사암에 상주하는 승려들은 ‘함안군 불교 연합회’를 결성하여 불법 홍포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경상남도 창원시 소재의 육군 향토 사단이 함안군 군북면으로 이전해 오면서 부대 안에 안국사(安國寺)가 창건되었는데, 이로써 병영 내 신행 활동과 지역의 불법 전파에도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