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제천문화대전 > 제천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전통 시대 >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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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후부터 300년경까지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고조선 말기에 한강 유역으로부터 남부 일대에 걸쳐 진국(辰國)이라는 하나의 큰 부락연맹체(部落聯盟體)가 형성된다. 그 당시 북쪽에 위치하였던 위만 조선은 우거왕(右渠王) 때 한무제(漢武帝)에 의해 멸망하고 한의 군현이 설치되었고 남쪽 진국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삼한으로 나뉘었다. 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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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가 정립했던 시대의 제천 지역의 역사 고구려·백제·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했던 시기부터 고구려 멸망(668년)까지의 시기에 제천 지역은 삼국의 접경지로 남한강을 둘러싼 영토 쟁탈의 중요한 전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직접적인 자료는 없지만 남한강 강변에 분포하고 있는 돌무지무덤 등을 통해 볼 때, 삼국 중 제천 지역에 가장 먼저 진출한 것은 백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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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 신라가 존속했던 시기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제천 지역은 6세기 중엽 진흥왕의 척경 정책으로 충주와 함께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제천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신라·고구려의 접경지로 삼국간 세력 쟁탈전이 벌어졌던 전략상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통일 신라 시대 신라가 경덕왕 16년(757)에 9주와 5소경을 설치하면서 제천 지역은 지금의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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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시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이 속했던 국가. 마(摩)는 ‘크다[大]’, 진(震)은 ‘동쪽[東]’이라는 뜻으로, 마진(摩震)은 ‘위대한 동쪽의 나라’를 의미한다. 당시 고구려의 계승자라는 발해가 진국(震國)이라 일컬었던 것을 의식하여 붙인 이름일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마진’은 고구려를 계승하는 위대한 동쪽의 나라라는 뜻이다. 진성여왕 대에 이르러 각지에서는 농민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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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대부터 757년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잡지4 지리2의 내제군(奈堤郡) 항목에는 “본래 고구려의 내토군[本高句麗奈吐郡]”이라고 하였다. 고구려의 지명으로 ‘냇물을 가로막은 커다란 제방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는 대규모 수리 시설인 의림지가 있던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다. ‘내토’라는 지명은 냇물을 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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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010년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행정 구역. 757년(경덕왕 16) 종래 사용해 오던 고구려 때의 행정 구역 이름인 내토군(奈吐郡)을 내제군(奈堤郡)으로 고치고, 영현(領縣)으로 청풍현(淸風縣)과 적산현(赤山縣)을 두었다. 경덕왕 때 전국의 고을 이름을 바꾼 이유는 ‘한화 정책(漢化政策)’의 일환이었는데, 귀족 세력을 억압하면서 전제 왕권 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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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제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사열이현(沙熱伊縣)은 오늘날 제천시 청풍면, 금성면, 한수면, 수산면 등에 해당한다. 고을의 중심 부분은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청풍호에 수몰되었다. ‘사열이’라는 지명은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에서 온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서늘하다’, 또는 ‘차다’는 뜻에서 나온 이두식 표현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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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내제군의 영현.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의 내제군(奈堤郡) 항목에 “영현(領縣)이 둘인데, 청풍현(淸風縣)은 본디 고구려의 사열이현(沙熱伊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적산현(赤山縣)은 본디 고구려의 현인데 경덕왕이 그대로 사용하였고 지금의 단산현이다[本高句麗奈吐郡 景德王改名 今堤州 領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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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317년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내제군의 영현.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757년(경덕왕 16) 9주와 5소경을 설치하면서 제천 지역은 삭주(朔州)[현 춘천]에 속하였으며, 이름도 고구려에서 사용하던 내토군(奈吐郡) 명칭을 내제군(奈堤郡)으로 바꾸었다. 영현(領縣)으로 청풍현(淸風縣)과 적산현(赤山縣)을 두었다. 청풍현은 본래 사열이현(沙熱伊縣)으로 이때 개칭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