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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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韓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김정희 |
[정의]
기원전후부터 300년경까지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개설]
고조선 말기에 한강 유역으로부터 남부 일대에 걸쳐 진국(辰國)이라는 하나의 큰 부락연맹체(部落聯盟體)가 형성된다. 그 당시 북쪽에 위치하였던 위만 조선은 우거왕(右渠王) 때 한무제(漢武帝)에 의해 멸망하고 한의 군현이 설치되었고 남쪽 진국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삼한으로 나뉘었다. 삼한의 위치는 대체로 오늘의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은 마한, 경상도 낙동강 동쪽은 진한, 경상도 낙동강 서쪽은 변한의 세력권으로 이해되고 있다. 당시 제천 지역은 북방 유이민들의 남하통로이면서 마한의 영향을 받았고, 4세기 경 백제에 완전히 복속된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의 부족으로 삼한 시대 제천 지역과 관련한 연구는 그다지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지금까지 조사된 일부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삼한 시대 역사상을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제천 지역의 삼한 시대 유적]
제천 지역에서 확인된 삼한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은 청풍면 양평리와 도화리의 고분과 제천 의림지, 왕암동 유적 등이다. 양평리와 도화리 무덤은 남한강변의 충적 대지에 냇돌[川石]을 쌓아 만든 장방형 내지 타원형의 무덤으로서 대략 2~3세기 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들은 각각 길이 60m[양평리 2호분]와 30m[도화리 무덤]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는 당시 남한강변에서 활동한 권력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다만 이들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로, 연구자에 따라 동예 또는 말갈 세력과 연결지어 이해하기도 하고 시기를 늦춰 백제의 지방세력으로 파악하기도 하는 등 이견이 있다.
의림지는 삼한 시대에 축조된 대표적인 농경 관련 수리 유적이다. 이와 같은 규모의 저수지의 존재는 그에 상응하는 권력자의 존재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양평리와 도화리 무덤의 주인공과 같은 세력가가 제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그들이 관개 시설 축조의 주체였던 것이 확인되는 셈이다. 다만 의림지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삼국 시대 이후로 추정하는 조사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어 단언하기 힘들다.
또한 왕암동 유적에서는 수혈 유구에서 다량의 타날문 토기가 출토되어 삼한 시기 제천 지역의 토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