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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한 아동 문학가. 권오순(權五順)[1919~1995]은 황해도 해주에서 교육 사업을 하던 권영붕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일본식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 집에서 어린이 잡지를 읽으면서 독학하였다. 1933년 『어린이』 5월호에 동시 「하늘과 바다」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후 『아동문예』에 여러 편의 동시를 투고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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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소설가. 권운상(權雲相)[1955~1996]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에서 권수(權洙)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중경고등학교를 다니던 1973년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하였으며, 국민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면서 유신 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학생 시위를 주동하였다가 1976년 제적되었다. 이후 광부·재단사·조선소 도장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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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한 화가. 김례호(金禮鎬)[1926~1971]는 평양 출신으로 사업을 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학 경력은 확실하지 않으나 해방 전부터 이중섭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일찍부터 동료들로부터 ‘한국의 고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개성 있고 역량 있는 작가로 평가되었다. 해방 후 평양미술연구소와 평양미술학교에서 활동하다가, 1949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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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의 대제중학교를 설립한 교육가. 김익로(金翼魯)[1917~1993]는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경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강원도 진부에서 오대물산을 창업하여 목재소, 정미소, 운수 업체 등을 경영하여 성공하였다. 오대산 일대의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평생 동안 66.16㎢에 1,200만 그루의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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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연약(淵若), 호는 퇴금(退琴). 민영복(閔泳復)[1859~1939]은 1885년(고종 22)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고, 내직으로 비서승, 외직으로 무주·금산·장성 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1895년 을미의병에 가당하였고,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1909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흥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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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한 문학가. 박지견(朴持堅)[1923~2004]은 호는 기호(豈乎)이며, 황해도 신계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34년간 중등 교사로 근무한 뒤 정년퇴직하였다.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제천에 터를 잡았다.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6년 제천문학회를 창립하고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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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고아원을 설립하고 활동한 신부. 봉희만(奉喜萬)[1916~1986]은 성심대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며, 서울 영등포와 인천 답동 천주교회에서 보좌 신부로 근무하였다. 1943년 말 제천 본당에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10년 동안 근무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끌었고, 미군 부대의 지원을 받아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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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교육가.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노촌(老村).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집안의 후손이다. 이구영(李九榮)[1920~2006]은 한학을 공부하다가 뒤늦게 신학문을 접하였다. YMCA 청년회 학교 중등부에서 수학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잠시 다녔다. 황한의학원에 입학하여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주의를 접한 뒤 항일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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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강천사를 세운 승려. 이대휘(李大徽)[1907~1992]는 법명이 대휘(大徽)이며, 법호는 노노(老老)이다. 선산 도리사에서 하정광 선사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사교(四敎) 및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고 통도사 백련암, 묘향산 상원사 등지에서 안거하였다. 1937~1942년 중국 천녕사·금산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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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시인이자 교육자. 이상필(李相弼)[1924~1975]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정학부에서 수학하였으며 1937년 약관의 나이에 시집 『잔몽(殘夢)』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어상천국민학교에서 근무하였다. 해방 후에는 고향인 제천에서 유학생 출신 청년들로 꾸려진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 선전대에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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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시조 시인. 이종훈(李鐘塤)[1931~2003]은 호는 월정(月汀)이며, 제천시 한수면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사관으로 참전하였다. 1958년 공무원에 임용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76년 제천문학회를 창립하면서 제천 문학에 성심을 기울였다. 198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입선하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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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한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신(子信), 호는 신와(信窩). 할아버지는 이직신(李直愼)[이소응]이고, 아버지는 이배인이다. 이초용(李超鎔)[1909~1992]은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해방 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정착하여 40년여 동안 화서학파(華西學派)와 의병론자들의 정신적 귀의처인 자양영당(紫陽影堂)을 수호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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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한학자이자 교육가.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치화(致和), 호는 계산(桂山)·소암(昭岩). 할아버지는 정운호(鄭雲灝)이고, 아버지는 정구택(鄭九澤)이다. 정원태(鄭元泰)[1913~1993]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의병 활동을 한 조부와 유지혁(柳芝赫)에게 한학을 배웠다. 1957년 제천에 대제중학교의 전신인 계림중학교를 설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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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의 자선 사업가.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기서(岐西).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의 10세손이다. 정해봉(鄭海鳳)[1888~?]은 천성이 온후하고 인자하였으며, 친척들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였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흉년이 들면 춘궁기에 100여 가구의 사람들에게 양곡을 풀어 구제하였고, 사찰에까지 보조를 아끼지 않았다. 제천시 금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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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향토사 연구가. 조석득(曺石得)[1920?~1998?]은 제천의 향토사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민족 교육의 요람인 정주의 오산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전에 제천공립보통학교[현 동명초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해방 후에는 민족청년단에서 청년 운동을 하였다. 교직에서 물러난 후 이상필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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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본관은 영양(潁陽). 호는 후석(後石). 아버지는 천명선(千命善)이다. 천관우(千寬宇)[1925~1991]는 청주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면서 반계 유형원에 관한 졸업 논문으로 일찍부터 이름을 얻었다. 6·25 전쟁 때 대한통신사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사·조선일보사·민국일보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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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영양(潁陽). 자는 우현(禹玄), 호는 석거(石居). 선조는 명나라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 휘하로 조선에 출정하여 여러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도 전공을 세우고 귀화한 천만리(千萬里)이다. 천인봉(千仁鳳)은 청풍문화재단지에 세워진 자선비에 의하면 관직은 의관(議官)이었다. 의관은 1895년(고종 32) 중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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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충주(忠州). 호는 만곡(晩谷). 아버지는 최상영(崔相暎)이다. 최병찬(崔炳贊)[1921~1999]은 경성사범학교 출신으로 25세 때 청주공립고등학교 교사로 교육계에 첫발을 디뎌, 청주농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방 후 낙향하여 제천시 동명국민학교 교사를 시작하여 여러 중등학교의 교감과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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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천 출신의 목사.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최경팔(崔慶八), 자는 선장(善章), 호는 탁사(濯斯). 할아버지는 최승장(崔承章)이고, 아버지는 의관 최영래(崔永來)[1829~1903]이며 어머니는 곽제한(郭濟漢)의 딸이다. 최병헌(崔炳憲)[1858~1927]은 제천시 신월동 새월이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목사로 어려서부터 『영환지략(瀛環志略)』을 읽으면서 기독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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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정치인.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동석(東石). 아버지는 한용호(韓龍鎬)이다. 한필수(韓弼洙)[1900~1986]는 휘문의숙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전문학교를 수료하고 만주 룽징[龍井]에 있는 동흥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1년 만주사변 후 귀국하여 제천으로 낙향하였으며, 한때 예천에서 광산업에 종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