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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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千寬宇 |
영어음역 | Cheon Gwanu |
이칭/별칭 | 후석(後石)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가계]
본관은 영양(潁陽). 호는 후석(後石). 아버지는 천명선(千命善)이다.
[활동 사항]
천관우(千寬宇)[1925~1991]는 청주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면서 반계 유형원에 관한 졸업 논문으로 일찍부터 이름을 얻었다. 6·25 전쟁 때 대한통신사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사·조선일보사·민국일보사·서울신문사·동아일보사 등에서 활발한 언론 활동을 펼쳤고, 1968년 『동아일보』 주필로 필화 사건에 휘말려 그만둘 때까지 언론의 자유와 자율을 신장하는 일에 앞장섰다.
3선 개헌 후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창립하여 공동 대표로 추대되었고,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공동 대표로 활동하였다. 유신 체제에서 사회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칩거하면서 한국사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여 괄목할 역작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활동을 재개하여 국토통일원 고문,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을 맡아 통일 운동에 관여하였다.
1985년 국정자문회의 위원으로 추대되었고, 1981년 이후에는 『한국일보』 상임 고문으로 언론 활동을 재개하였다. 건국대학교 대우 교수, 인하대학교 객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근세조선사연구』, 『고조선사삼한사연구』, 『가야사연구』, 『인물로 본 한국 고대사』, 『한국사의 재발견』, 『한국근대사산책』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외솔상을 받았고, 1983년 금관문화훈장이 서훈되었다. 1990년에는 치암학술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