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마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693
한자 佐魯麻都
영어공식명칭 Jwaromad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김주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541~550년 - 좌로마도 아라가야에서 외교 사신으로 활동
출생지 가야 - 전라북도 남원시
출생지 가야 - 경상남도 하동군
거주|이주지 아라가야 - 경상남도 함안군
활동지 아라가야 - 경상남도 함안군
성격 외교 사신
성별
대표 경력 대련

[정의]

삼국 시대 아라가야에서 활동한 가야의 외교 사신.

[개설]

남가라[가락국]와 탁순국[현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후기 가야 13국 중의 한 나라]이 신라에 멸망함에 따라 아라가야는 신라의 진출을 저지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로마도(佐魯麻都)는 가와치노아타히[하내직(河內直)] 및 아현이나사(阿賢移那斯)와 더불어 아라가야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활동 사항]

좌로마도아현이나사와 함께 한복(韓腹)[가야인과 왜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가야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성왕(聖王)이 좌로마도아현이나사 등이 신라와 계략을 통하였다고 말한 것이나, 임나 재건을 위한 성왕의 소환 요구에 세 차례나 불응하였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친신라 반백제 성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좌로마도는 신라의 나마(奈麻)라는 직위의 예관(禮冠)을 쓰고 신라를 자주 왕래하였는데, 이 때문에 성왕은 이들을 본처로 송환하라고 왜왕에게 계속 요구하였던 것이다. 왜의 신하로서 아라가야에 머물고 있던 이쿠하노오미[적신(的臣)], 기비노오미[길비신(吉備臣)], 가와치노아타히[하내직] 등을 아현이나사좌로마도가 조종하였다는 것은 좌로마도아현이나사와 함께 가야인으로서 아라가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며, 아라가야의 독자성을 유지하고자 외교적 노력을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좌로마도가 대련(大連)의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좌로마도 등은 친신라·반백제 정책을 통하여 아라가야를 신라의 침략으로부터 막고자 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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