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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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頭鶴洞姜氏講堂由來 |
영어음역 | Duhak-dong Gangssigangdang Yurae |
영어의미역 | Origin of Gang Clan's Lecture Hall |
이칭/별칭 | 「강강당」,「강씨 강당」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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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관련 지명 |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
채록지 |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
성격 | 전설|집안 내력담 |
주요 등장 인물 | 강도령|충청감사 |
모티프 유형 | 충청 감사에게 상을 받은 강도령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에서 제천 박약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두학동 강씨강당 유래」는 충청감사의 행렬을 구경하지 않고 혼자 글을 읽는 강도령이 갸륵하여 충청감사가 후한 상을 내렸다는 집안내력담이다. 제천시 두학동 검은돌[玄岩]마을에 ‘제천 박약재(博約齋)’가 위치하고 있다. 제천 박약재는 진주 강씨 문중에서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조선 중기에 세운 강당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전설지』에는 모두 「강강당(姜講堂)」으로 되어 있고, 『제천시지』에는 「강씨 강당(講堂)」이라고 하였다.
[내용]
조선 시대 초기를 지나 중기에 접어들 무렵 강씨 집안에 총명한 도령이 있었다. 8세 때 『논어(論語)』는 물론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논할 정도였다. 강도령이 열두 살 되던 해 어느 날, 평상시처럼 동료 학동들과 함께 서당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밖이 왁자지껄하면서 떠들썩하더니 나팔 소리까지 나는 것이었다.
함께 공부하던 아이들은 모두 무슨 일인가 해서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강도령만은 자리를 뜨지 않고 글 읽기를 계속하였다. 밖에는 충청감사 행차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을 구경하려고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떠들썩하였던 것이다. 감사 행렬이 서당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행렬에 아랑곳없이 누군가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행렬을 멈추게 한 감사는 별배(別陪)를 시켜 글 읽는 사람을 데려오도록 했다.
별배와 더불어 나온 강도령에게 감사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길에 나와 있는데, 너만은 혼자 글을 읽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냐?” 강도령의 대답은 간단했다. “학문은 촌음(寸陰)을 아껴 정진해야 하는데, 감사 행렬이 있다고 하여 밖에 나와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감사는 강도령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강도령은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약관(弱冠)에 등과(登科)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두학동 강씨강당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충청감사에게 상을 받은 강도령’이다. 강도령은 충청감사 행렬로 떠들썩할 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서당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으며, 이를 본 충청감사는 강도령에 후한 상을 내리게 된다. 「두학동 강씨강당 유래」는 진주 강씨 집성촌인 검은돌마을에서 제천 박약재를 중심으로 전승하고 있으며, 강씨 집안 내력 또는 집안 자랑의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