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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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里洞祭 |
영어음역 | Sin-ri Dongje |
영어의미역 | Sin-ri Village Ritual |
이칭/별칭 | 신리 산제사,신리 서낭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희 |
의례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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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신앙|산신제|서낭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5일 즈음 |
신당/신체 | 신목|제당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신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신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신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 즈음을 길일로 택일(擇日)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신리 동제는 산제사, 서낭제의 순으로 진행된다. 먼저 산천고사[山神祭]를 지내고 다음에 서낭제를 올렸다.
[연원 및 변천]
신리 동제는 천지봉 정상에서 지내던 산신제와, 큰마을 어귀 서낭당에서 올리는 서낭제를 말한다. 천지봉 산제당의 신체(神體)인 동시에 제장(祭場)의 역할을 하던 소나무는 1950년대 말 송충이 피해로 고사(枯死)하였다. 당시 신목(神木)인 소나무에서 생긴 송충이가 천지봉의 나무들을 모두 갉아 먹어 마을의 주산(主山)인 천지봉이 벌거숭이가 될 정도였다.
예전부터 마을에 내려오는 속언(俗言)에 신목에서 송충이가 생기면 나라에 큰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나무가 송충이로 인해 고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4·19가 일어나, 마을 사람들은 이를 신목의 영험으로 여겼다. 큰마을 어귀에 있던 서낭당은 1970년 새마을 운동 당시 마을길을 넓히고, 미신 타파(迷信打破)를 부르짖던 시대 상황에 맞물려 없어졌다.
산제당과 서낭당이 일실된 후 신리 동제는 시나브로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당은 천지봉 정상에 서 있던 오래된 소나무였다. 서낭당은 큰마을 어귀에 자리 잡았던 제당이었다.
[절차]
신리 동제는 마을 사람들이 설날을 지낸 후 제일(祭日)을 택하고, 제관(祭官)을 선출하는 것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제일은 대개 정월 대보름 즈음에 택일하였다. 제관은 연륜과 학식 있는 사람이 주민들의 생기(生氣)와 복덕(福德)을 가려 선출하였다. 제관은 선출된 후부터 제일까지 엄격한 금기(禁忌)를 지킨다. 금색(禁色), 금연(禁煙), 금주(禁酒) 등의 금기를 지키면서 외부 출입을 삼가고, 목욕재계(沐浴齋戒)하여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제를 준비했다.
제물은 백설기 한 시루와 막걸리로 다소 간소하다. 막걸리는 청풍 도가에서 사서 제주(祭酒)로 사용했다. 제의 진행은 간소한 유교식 제의 절차에 맞춰 헌작(獻爵), 재배(再拜), 소지(燒紙)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제를 올린 후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음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