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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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禹弼圭 |
영어음역 | U Pilgy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활동 사항]
우필규(禹弼圭)는 평창에 살았으며,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합류하여 좌익장에 임명되었다. 충주성을 점령하였던 호좌의진이 제천으로 물러선 이후, 충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하여 파랑령[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배론마을 서쪽의 조백석골에서 백운면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전투 부대를 이끌고 방어하였다.
의병이 해산된 후 평창의 향장(鄕長)으로서 우체 및 통신 업무에 종사하다가, 1905년(고종 42) 국권 침탈에 저항하면서 봉기한 원용팔(元容八)의 의거에 다시 참여하였다. 원주 진위대에 의진이 무너질 때 원용팔과 함께 체포되어 이듬해 봄까지 갇혀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의병을 일으켰을 때 일본인 통신원 한 명을 잡았다가 죽이지 않고 놓아 준 일이 있었는데, 후일 그가 옥으로 찾아왔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