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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784
한자 李玄錫
영어음역 Yi Hyeonseok
이칭/별칭 하서(夏瑞),유재(游齋),문목(文穆)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양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4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6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75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7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8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8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89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9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95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703년연표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주(全州)
대표 관직 형조 판서

[정의]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하서(夏瑞), 호는 유재(游齋). 시호는 문목(文穆). 증조할아버지는 이수광(李睟光)이고, 아버지는 퇴촌(退村) 이당규(李堂揆)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활동 사항]

이현석(李玄錫)[1647~1703]은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1675년(숙종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1676년(숙종 2) 예문관 검열을 거쳐 삼사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682년(숙종 8) 승정원 우부승지가 되었으나, 송시열(宋時烈)과 대립하여 철원으로 유배되었다. 1687년(숙종 12) 다시 서용되어 장예원 판결사, 병조 참의가 되었다. 1688년(숙종 13) 안동 부사, 1689년 경상도 관찰사, 1691년(숙종 17) 춘천 부사가 되었다. 그 뒤 승정원 도승지, 한성부 판윤, 안변 부사,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경제 세무에 밝고,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진휼에 힘을 쏟았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유재집(游齋集)』과 1695년(숙종 21) 청풍 부사로 자원하여 일할 때 저술한 『명사강목(明史綱目)』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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