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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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岩里黃澗院址 |
영어음역 | Myeongam-ri Hwangganwon Teo |
영어의미역 | Hwangganwon Post-stations Hostel Site of Myeongam-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1반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류금열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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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1반 |
성격 | 역원 터 |
소유자 | 사유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역원 터.
[개설]
조선 시대 제천에서 원주로 통하는 32㎞[80리] 관로의 중도에 원(院)을 설치하여 여객의 편의 시설로 숙식을 제공한 황간원(黃澗院)은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 주포리와 의림지 피재로 통하는 미륵당교 삼거리 지역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현재는 역원의 지명만 남아 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충청북도 제천현 역원조에 “황간원은 제천현에서 서북쪽으로 27리에 있다”라는 기록을 통하여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899년(고종 36) 편찬된 『제천군읍지(堤川郡邑誌)』에 “황간원은 지금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다. 다만 이보다 앞선 1872년(고종 9) 제작된 「제천현지도」를 보면 제천현에서 원주 방면으로 가는 역로를 따라 신담점(新潭店), 횡치점(橫峙店), 광암점(廣岩店)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에서 12㎞[3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횡치점이 본래 황간원이 담당하던 기능을 대신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황간원은 조선 시대 역원 체계의 개편으로 제천과 원주를 잇는 관로상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1872년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추측된다.
[위치]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천현에는 제천에 소재한 역원을 나열하면서 “황간원은 현 서북쪽 27리에 있다”라고 기록하였고, 『제천군읍지』 역원조에는 “황간원은 현의 서북 27리에 있으나 지금은 없다”라면서 교량조에 “황간원교(黃澗院橋)가 현의 서북쪽 25리에 있는데 옛날에는 판교이었으나 지금은 없앴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제천에서 원주로 통하는 관로상에 있던 황간원은 현의 치소 서북쪽 약 10.8㎞[27리]에 위치하고, 약 800m 전에 황간원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 “황간원 터는 미륵댕이에 있는 조선 시대의 원 집터”라고 되어 있다. 미륵댕이는 현재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사지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으로, 부근에 미륵당교가 있다. 이곳의 주변 상황은 조선 시대 사료에 기록된 황간원의 모습과 일치한다. 따라서 황간원은 현재 미륵당교 건너 삼거리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삼거리 길가의 가게 북측면에 약 130년 전에 흙집으로 만든 두 채의 주점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곳에서 조선 시대 자기 및 옹기 조각 등이 수습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2003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작성할 때 현장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중앙고속도로 옆에 있는 미륵댕이마을 앞쪽 밭 일대를 명암리 황간원 터로 추측하였고, 현장에서 기와 및 백자 조각을 수습하였다고 기술하였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