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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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里黃江驛址 |
영어음역 | Yeok-ri Hwanggangyeokteo |
영어의미역 | Hwanggangyeok Post-station Site in Yeok-ri |
이칭/별칭 | 역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149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류금열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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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149 |
성격 | 역 터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충주댐 수몰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황강역(黃剛驛) 터.
[개설]
고려 시대 평구도에 속한 황강역은 조선 시대 황강역(黃江驛)으로 변천하였으며, 황강도(黃江道)에서 독립적으로 관할한 역은 6개소로 제천, 단양, 영춘 일대를 관장하였다. 황강역은 경상도 및 충청도와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역으로 발전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연원도에 속하였다.
[변천]
『고려사(高麗史)』에 황강역은 평구도(平丘道) 관할하 30개소 중에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교통로는 남한강 상류 지역에 경기도 양주의 평구역에서 지평-충주-원주-청풍에서 원주를 거쳐 제천을 통하여 영월-단양-영춘-평창-횡리-흥주-강주-감천-봉화로 교통로를 구획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충청도 충주목 청풍군조에 “청풍군은 역(驛)이 3이니, 황강(黃江), 수산(壽山), 안음(安陰)이다”라고 기록하였으며 같은 책 충청도조에 황강도(黃江道)의 관할 역이 6이요[수산(水山)·장림(長林)·영천(令泉)·천남(泉南)·안음(安陰)·의풍(義豐)이다. 의풍의 속칭은 오사호(吾賜乎)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 사료는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은 황강도의 관할로 황강, 수산, 천남, 안음역이 존재했으며 단양, 제천, 영춘 일대의 역로를 관장한 교통의 요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1462년(세조 8)에 병조의 건의로 각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여 찰방과 역승을 두면서 충청도 연원역(連原驛)·단월역(丹月驛)·황강역·수산역·안음역·안부역(安富驛)·신풍역(新豐驛)·인산역(仁山驛)·감원역(坎原驛)·용안역(用安驛)·장림역(長林驛)·영천역(靈泉驛)·오사호역(吾賜乎驛)·천남역(泉南驛) 이상 14역은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의 소속으로 재정비하게 되었다.
[위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역리(驛里)는 관문에서 거리가 30리이며, 편호는 50호에 남자가 83명 여자가 112명”이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황강역은 원서면(遠西面) 30리에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은 충주댐 수몰 전 제천시 한수면 역리 149번지 일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3년 충주댐 수몰 한계선 해발 145m 이내에 소재한 역리 황강역 터는 발굴 조사단이 발굴 조사하여 황강역 터 구조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계단식 마사[2.5×5m]와 철제 유적이 발견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황]
『여지도서』에 “황강역은 대마 3필, 기마 3필, 복마 3필, 역졸 남자 54명, 여자 50명이다”라는 기록에서 9필의 마사와 역의 상주 인원은 역촌(驛村)을 형성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둔전(驛屯田)은 신평(新坪)에 논 318두락, 구평(舊坪)에 논 209.2두락, 황강원(黃江員)에 논 5두락과 밭 151두락, 한천원(寒泉員)에 밭 417두락, 역리원(驛里員)에 밭 71.45두락과 논 3두락, 하노탄(下老炭)에 밭 3.5두락, 서창(西倉)에 논 6두락과 밭 88두락, 덕곡(德谷)에 밭 21두락, 명오(鳴梧)에 밭 10두락과 논 7두락 등이 역리 주변에 분포하여 도조를 받아서 운영하였음을 보여준다. 한수면 역 터로 알려진 역말과 오동골에 산포한 주초석과 석재는 주민들이 빼내어 사용하거나 수로를 건설하면서 역 터의 석재를 반출하였다.
[의의와 평가]
남한강 상류의 수운과 육로를 이어주는 수륙 교통로의 중심지로 『여지도서』의 “오현(吾峴)은 청풍부의 남쪽으로 50리에 있다. 황강역으로부터 통하는 죽령대로이다”라는 사료에서 경상북도 지역의 주요 교통로인 죽령을 통하여 충주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 유동 인구가 많았던 황강도에 속한 황강역에서 제천, 단양, 영춘 일대에 역참을 관할한 것만 보아도 남한강 상류 지역에서 대표적인 역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