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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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山城 |
영어음역 | Seongsanseong |
영어의미역 | Seong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강제리산성,동막리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 산121-1|명지동 15-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백종오 |
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 산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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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명지동 15-1 |
성격 | 성곽 |
양식 | 토석 혼축 |
크기(높이, 길이, 둘레) | 630m[둘레]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와 명지동에 있는 통일 신라의 테뫼식 산성.
[개설]
성산성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와 명지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426.7m의 성산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성산성에 관한 옛 기록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충청북도각군읍지(忠淸北道各郡邑誌)』에서 보인다. 즉 “성산의 옛 성과 제비랑산의 옛 성은 모두 언제 쌓은 바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토성(土城)으로 2~3중으로 산정을 둘러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문화유적총람』에는 “성산의 정상에 2중으로 둘러쌓은 토석 혼축 산성으로 성내에서는 신라 계통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였으나 구체적인 조사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성의 개략적인 성격이 파악되었다. 성은 성산의 정상부에서 동쪽, 서쪽,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의 상단을 에워싼 테뫼식 산성으로, 동문지와 서남문지, 그리고 서북문지 등 3개의 문지와 건물지 2개소가 확인되었다. 산성 내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주로 8~11세기에 이르는 유물이 수적으로 월등한 비율을 보이고 있어 성산성의 중심 연대 또한 이 시기로 볼 수 있다.
[건립 경위]
성산성은 발굴 조사 등의 구체적인 학술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폐성 시기와 관련하여 조선 전기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말응달산(末應達山)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 이전에 폐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위치]
성산성은 제천 시가지 남쪽 독립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성산에 위치한다. 동남의 고교천(高橋川)과 북쪽의 장평천(長坪川)이 흐르는 중앙부에 있다. 북쪽으로 국도 38호선과 국도 5호선이 만나는 지점이 있고, 서쪽으로 제천과 청풍을 잇는 지방도가 남북 방향으로 나 있어 제천 시가지를 통하는 교통로를 한눈에 감제할 수 있는 요충지에 해당한다.
[형태]
성산성은 성산 정상부를 에워싸고 축조되었는데, 전체 둘레는 630m이며 평면 형태는 대개 삼각형에 가깝다. 성벽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대를 통과하고 있는데, 북쪽 성벽의 서쪽과 동쪽에서 내외 겹축된 벽체가 확인된다. 성벽 안쪽으로는 좁게는 6~7m, 넓게는 15m 너비의 평탄한 대지, 즉 내환도가 성벽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현황]
성산성은 오랜 기간 군용지로 사용되어 정상부에는 헬리포트가 있고 동쪽, 남쪽, 서쪽으로 참호가 남아 있으나 성벽의 윤곽은 동남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양호하게 남아 있다. 북벽은 굴곡이 거의 없이 곧게 동쪽으로 뻗어 동북쪽 능선에서 회절한 다음 동문지까지 이르는데, 성벽 상단에 내외 겹축된 모습이 확인된다. 동벽 구간은 동문지에서 남쪽 끝의 능선을 따라 나 있으며, 성벽은 중앙의 정상부에서 남향하여 낮아지는 능선의 동쪽 사면을 따라 남쪽으로 점차 낮아진다. 일부 구간에서 석축의 흔적이 확인된다. 남쪽 성벽은 동쪽의 소로와 서쪽의 소로, 즉 서남문지까지의 구간으로, 성벽 안쪽으로 너비 15m의 평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성벽이 가장 낮은 지점을 지나고 있다. 서벽은 서남문지에서 서북문지에 이르는 구간으로, 성벽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낮아지며 성벽 안쪽으로는 평탄한 내환도가 돌아간다.
[의의와 평가]
성산성은 당초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지표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산성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편년이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중심 경영 시기는 통일 신라~고려 시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성의 입지와 삼국 시대 제천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한다면 보다 앞선 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한편 『문화유적총람』에는 1896년(고종 33) 4월에 “의병대장 유인석(柳麟錫)이 왜적을 격퇴하였다고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개항기에 의병의 활동 무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산성은 제천 중심 지역에 위치한 산성으로 앞으로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