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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44
한자 黃石里山城
영어음역 Hwangseongnisanseong
영어의미역 Hwangseokri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성치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산277-1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백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산277-1
성격 성곽
양식 석성
크기(높이, 길이, 둘레) 600m[둘레]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축 산성.

[개설]

황석리 산성은 해발 345.9m의 봉우리에서 남북으로 긴 능선을 에워싼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자연적인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축조하였으며 둘레는 600m 내외이다. 황석리 산성에 대해서는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서 처음 언급하는데, “석축된 성벽의 길이가 20~30칸으로 활 모양으로 남아 있고 대부분 붕괴되었으며 민보(民堡)라 칭하고, 임진왜란의 축조와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문화유적총람』을 비롯한 자료에 따르면 성내에서 삼국 시대의 토기편이 발견된 점을 들어 삼국 시대 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황석리 성치산성’이라 하여 비교적 자세한 사항을 기록하고 있으며, 성의 둘레를 245m라 하여 차이는 있으나 이것이 황석리 산성의 다른 이름인 것이 분명하다. 황석리 산성이 위치한 청풍 지역에는 선사 시대의 황석리 고인돌이 남아 있으며, 고구려의 사열이현(沙熱伊縣)으로 한강 상류 지역을 둘러싼 삼국 간의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현재 성벽의 대부분이 붕괴되었으나 성내에는 평탄지와 건물지, 주춧돌 등이 확인된다.

[건립 경위]

황석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구체적인 건립 시기를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기록에 보이는 민보(民堡)가 주민들의 입보농성(入保籠城)을 의미하므로, 고려 후기 왜구(倭寇)의 침입 기록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내에서 확인된 유물들이 대체로 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삼국이 한강 유역을 무대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시기와 관련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으로는 멀리 충주 남산성이, 동쪽으로는 대덕산성작성산성, 견제산성, 저산성, 망월산성, 비봉산성, 그리고 청풍토성이 잘 보이는 위치이다. 따라서 한강을 따라 이동하는 적들을 감제하기에 좋은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위치]

제천시 금성면에서 지방도 532호선을 따라 후산리 낚시터를 지나면 도로 남쪽에 황석리 산성이 위치한 높은 봉우리가 나온다. 황석리 산성이 위치한 곳은 해발 345.9m의 봉우리가 북쪽 낮은 안부(鞍部)를 지나 우뚝 솟은 곳에 해당한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에는 제천시 청풍면 단돈리에서 황석리로 이어지는 고갯길을 이용하여 황석리 산성에 이를 수 있었으나, 현재 호반로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오를 수 있다.

[형태]

황석리 산성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점차 낮아지는 산줄기의 정상 부분에서 남북 방향의 경사가 둔화된 능선 상의 긴 활모양 대지 정상부를 에워싼 전형적인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산성의 평면은 남쪽으로 넓어진 주걱 모양이고, 남북 길이 270m, 동서 최대 너비 100m 미만으로, 전체 둘레는 600m 정도이다.

[현황]

황석리 산성은 서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의 일부 구간에서 석축된 성벽이 무너진 상태이며, 나머지 구간에서는 자연 암반 지형을 이용하였다. 현재 성벽이 대부분 붕괴되어 축조 방법을 확인하기 어렵다. 산성의 동쪽 계곡 상단을 일부 평탄지로 하여 계단식의 대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남쪽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망대 등의 시설과 문터를 시설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민묘가 들어서 있는 남쪽의 평탄한 대지 상에는 초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초용 석재가 동서로 4개, 남쪽으로 1개 드러나 있는데, 건물 터의 범위는 남북 25m, 동서 15m 정도이다. 동쪽으로도 남북 14m, 동서 7m 정도의 반타원형 평탄 대지가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황석리 산성은 한강을 조망하기에 좋으며 서쪽으로는 충주의 남산성[충주산성]과 마주하고 있고, 남쪽과 동쪽으로 청풍의 옛 관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성터들이 모두 조망된다. 그러므로 1차적으로 청풍의 외곽 방어망을 구성한 한강 유역 여러 요새 중 하나로서 한강 수운을 감제할 수 있는 기능과 관련이 있는 유적이다. 현재 유물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동안 알려진 삼국 시대의 유물로 볼 때 당시의 산성으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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