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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030
한자 宗敎
영어공식명칭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상현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종교는 초자연적 존재 혹은 존재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들의 힘을 빌어 이상적인 삶에 대한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각종 의식·의례 행위를 지칭한다. 2016년 10월 현재, 경상남도 함안군에는 불교, 유교, 천주교, 개신교 외 기타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가 분포하고 있다. 불교는 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암(元曉庵), 장춘사(長春寺) 등의 사찰은 지역인들이 즐겨 찾는 신행 공간이 되고 있다.

삼국 시대 이래 나라를 다스리는 중심 원리로서 중시된 유교는 고려~조선 시대에 와서 학문적 내용과 함께 종교적 성격을 더하였다. 향교는 공자(孔子)를 배향하고 서원은 유현(儒賢)을 배향하여 학문 연구는 물론 정신 수양의 도량(道場)으로 기능하였다. 서원으로는 주세붕(周世鵬)을 제향하기 위한 덕연 서원(德淵書院)과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를 제향하기 위한 서산 서원(西山書院)이 유명하다.

천주교는 1594년(선조 27) 일본의 종군 신부 세스페데스가 내한한 이래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수용되었으며, 18세기 후반 종교 활동을 본격화 하였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1883년(고종 20) 동천·밤대·논실 등의 공소를 통해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함안 본당이 들어선 것은 1932년 6월 베르몽 신부에 의해서였다. 한편 개신교는 사촌 교회(舍村敎會), 이령 교회(二靈敎會), 칠북 교회, 부봉 교회, 군북 교회, 하기 교회 등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손양원(孫良源)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신종교는 성립 시기가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원불교나 성덕도(聖德道)처럼 새로운 민족 종교도 있고,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 함안 교회처럼 기독교를 재해석한 것도 있으며, 또 천리교나 한국 SGI와 같이 일본에서 전래된 것도 있다.

[불교]

현재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지는 곳은 여항산(艅航山) 자락에 위치한 원효암이다. 신라 시대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수행했던 곳이라 전해 오는데, 창건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으나 함안 지역의 불자들이 두 성인의 자취를 찾거나 그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개창된 것으로 여겨진다. 통일 신라 시기 함안의 불교 신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으로는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소재의 함안 방어산 마애 약사여래 삼존 입상(咸安防禦山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보물 제159호] 이 있다. 삼존 입상은 801년[애장왕 2] 미도진이 부모님과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조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주존은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이다.

장춘사 역시 통일 신라 시대인 832년(흥덕왕 7)에 창건된 곳이다. 무염(無染)이 신라를 침략한 왜적을 물리치자 왕이 이에 대한 보답으로 현재의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무릉산 자락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현재 통일 신라~고려 시대 조성의 장춘사 석조 여래 좌상(長春寺石造如來坐像)[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7호]과 고려 시대 조성으로 추정되는 장춘사 오층 석탑(長春寺五層石塔)[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68호] 등이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의 청송사(靑松寺)는 낙동강 최고의 절경에 위치하여 낙동강 뱃길을 이용하는 상인들과 지역민의 발길이 이어져 조선 시대까지도 상당한 규모의 사세(寺勢)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744년(영조 20) 박상절의 『도설 용화 산수도(圖說龍華山水圖)』의 판각화가 남아 있고,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함안현」에도 용화산(龍華山)에 사자사(獅子寺)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한편 현재의 능가사(楞伽寺)는 1900년대 초 칠성과 용왕을 모시는 조그만 기도처에서 비롯되었다.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사찰로 용주사(龍珠寺)라는 사명을 걸었다가, 1972년에 능가사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봉안된 「함안 능가사 칠성탱(咸安楞伽寺七星幀)」[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96호]은 그 제작 기법에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교]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유교 활동을 알려주는 것으로 향교와 서원이 있다. 향교는 고려~조선 시대 지방의 생도를 뽑아 국가가 직접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함안 향교와 칠원 향교가 있었다. 함안 향교는 1392년(태조 원년)에 창건되어 1595년(선조 28) 현재의 위치로 대성전을 이건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으로 명륜당과 동재가 소실(燒失)되고 건물의 일부분이 파손되었다. 1957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였고, 1964년 대성전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칠원 향교는 창건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현의 동쪽 3리 지점에 있다는 기록을 통해서 조선 초기부터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일찍부터 서원이 창건되었다. 함안군 출신 현유(賢儒) 주세붕을 배향한 덕연 서원과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를 배향한 서산 서원 등 사액 서원 2곳을 포함하여 총 17곳의 서원이 건립되었다. 1591년(선조 24) 덕원 서원이 건립된 이래 1600년대는 덕암 서원을 포함한 5곳이, 1700년대에는 기양 서원을 포함한 9곳이, 1800년대에는 도남 서원이 건립되는 1854년(철종 5)까지 2곳의 서원이 각 지역에 건립되었다. 이들 서원에서는 많은 유교 지식인을 배출하였을 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교양과 심성의 함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를 비롯하여 최초의 서원을 건립했던 주세붕 등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유교적 소양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충의·관료·학자·효행·열녀 등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고 있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천주교]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천주교인들이 처음 정착한 곳은 강변 저습 지대였다. 해마다 홍수가 나는 것을 알고 있던 토착민들은 이 땅을 방치하였는데, 피난해 온 천주교인들은 그 땅을 가꾸면서 차츰 내륙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1932년 6월 5일 함안 본당이 들어섰다. 지금의 함안 성당함안군 가야읍 도항리(道項里)에 있다. 도항은 질목[길목]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말산과 검암을 연결하는 큰 길의 목에 해당한다. 이는 사람들은 별로 살지 않았던 곳을 중심으로 천주교인들이 모여들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1883년 로베르 신부의 보고서에는 함안 지역의 동천·논실·밤대 공소가 등장한다. 함안의 도시화는 인근 농촌 사람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는데 논실 공소가 사라진 것은 이런 변화의 결과였다. 젊은이들이 떠나자 남은 신자들은 서서히 가등 쪽으로 옮겨갔고, 이렇게 해서 1900년(광무 4) 이후 가등 공소는 함안 지역을 대표하는 교우촌이 되어 훗날 대산 본당의 모체가 되었다.

동박골 공소는 타케[嚴宅基] 신부의 1899년(광무 3) 교세 통계표에 처음 등장한다. 타케 신부는 부산 본당 주임으로 1898년(광무 2) 5월 부임하였다. 부임 즉시 공소 순방에 나섰고 동박골 방문은 처음이었다. 동박골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위치하며, 남강낙동강이 만나는 지역이었다. 옛 지명은 장포리로 옛날부터 물이 범람했던 곳이었다. 말산 공소는 함안군 가야읍에 있었다. 논실은 대산 지역을 대표하고 율량은 가야 지역을 대표하는 공소였다. 칠원에는 죽청 공소가 있었다. 죽청 공소 역시 피난한 신자들이 내륙 정착에 성공한 경우였다.

[개신교]

경상남도 함안 지역 개신교 교회사는 군북면 사촌리사촌 교회에서 시작된다. 1897년 3월에 설립되어 2016년 2월 현재, 119주년을 맞은 오래된 교회이다. 당시는 전통의 유교와 불교를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촌 지역민의 신앙심과 근방의 광산에 많은 노무자들이 상주하여 교회 설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함안 지역 기독교의 기원이 되는 곳으로 또 한 교회는 지금의 이령 교회이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설립에 관한 주요 문서인 『조선 야소교 장로회 사기』[1928] 등에서는 1899년에 김세민이 건립했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1916년에 김세민이 경상 노회에서 장로에 임명되고 이령 교회의 당회가 조직되었다. 이령 교회는 경상남도 지역의 3·1 독립 운동과도 밀접한 관련을 보여준다. 1919년 3월 9일에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연개장터 만세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김세민이다. 연개장터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만세 운동, 칠서면 이용리 만세 운동, 함안읍 만세 운동, 일제의 무자비한 집단 학살이 자행된 군북 시장 만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에 위치한 칠원 교회의 역사는 1906년부터 시작된다. 1908년 4월 손종일(孫鍾一) 장로가 이현리에 초가 2칸을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1910년 6월에 덕산리로 이전하여 초가 4칸으로 교회를 신축했다고 전한다. 손종일 장로의 아들 3명은 모두 목사가 되었다. 특히 손양원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나병 환자를 돌보았으며, 자식을 죽인 범인을 양아들로 삼는 등 용서와 화해의 순교자로 추앙받고 있다.

[기타 종교]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유입된 신종교는 원불교나 성덕도처럼 한국에서 발상한 것도 있고,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처럼 기독교를 재해석한 것, 천리교나 한국 SGI와 같이 일본에서 전래된 것 등이 있다. 원불교는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깨닫고, 일체의 생령(生靈)을 교화하기 위해 개창한 종교이다. 경상남도 함안에서는 1974년 원불교 군북 교당과 1976년 원불교 함안 교당이 설립되면서 활동을 본격화 하였다. 천리교는 일본인 나까야마 미키[中山美伎]가 창립한 신흥 종교이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가야읍함안 교회, 대산면의 대산 교회, 칠원읍칠원 교회, 군북면의 대한 천리교 포교소 등이 있다.

문선명(文鮮明)의 선교로 1954년 창시된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약칭 통일교]은 한국에서 발생한 종교 가운데 국내외적으로 가장 주목 받는 기독교 계통 신흥 종교이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1957년 박기종이 개척하기 시작하였고, 1976년에 가야읍 말산리에 교회당을 설립하였다. 2016년 5월 현재, 목회자 1명과 다수의 신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의 승려 일련(日蓮)을 교조로 하는 신종교인 한국SGI는 창가학회의 해외 조직이다. 신자들이 외우는 주문으로 인해 남묘호랭게교[南無妙法蓮華經] 속칭 남녀 호랑교라 불리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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