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099
한자 聖堂
영어공식명칭 Roman Catholic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용민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천주교도들의 의례 및 집회 장소.

[개설]

경상남도 함안 지역은 일찍부터 피난 교우들이 모여 살았다. 낙동강남강을 따라오다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큰 비가 오면 강 수위가 높아져 물이 범람하는 지역이라 했다. 피해가 상존하기에 지방 사람들은 이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런 곳이었기에 피난 교우들이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강 상류에 진양호와 댐을 만든 뒤로는 옥토로 바뀌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교우촌에도 변화가 왔다.

1883년(고종 20) 로베르 신부의 보고서에는 함안 지역 공소 셋이 등장한다. 동천공소, 논실공소, 밤대 공소이다. 그러나 동천 공소는 1885년(고종 22) 자취를 감추고, 밤대 공소도 1889년(고종 26)부터 통계표에 나오지 않는다. 오직 논실 공소만 끝까지 등장하고 있다. 논실의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이다. 원래 이 지역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속해 있었는데 1973년 가야면이 확장되면서 편입되었던 것이다. 논실은 답곡 마을이라고도 했다. 산서리에서 북동쪽 산을 넘으면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가등 공소]가 있다.

동천 공소와 밤대 공소는 1885년과 1889년에 없어지지만 그 자리를 읍 공소와 율량 공소가 채운다. 율량 공소는 1891년부터 계속 등장한다. 동천의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밤대 공소는 율량 공소 인근인 듯하다. 율량의 율은 밤나무를 뜻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당시 함안 군수가 살던 곳을 읍이라 표현했다. 이곳 교우들을 방문하고 읍 공소로 보고했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피난 교우들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강변 저습지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해마다 홍수가 나는 것을 알고 있던 토착민들은 이 땅을 그대로 버려두었다. 그러나 피난 교우들은 그 땅을 가꾸면서 차츰 내륙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에 본당이 서는 것은 훨씬 뒤인 1932년 6월 5일이다. 이렇듯 본당 설립이 늦은 것은 교우촌이 많았던 대산에 본당을 계획했지만 결국은 함안 지역에 장래성을 생각하여 지금의 가야읍이 선정되었다. 지금의 함안 본당 땅을 매입하고 본당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한 이는 당시 마산 본당의 베르몽 신부였다. 원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자체도 저습지로 옛 이름이 방목이었다. 가축을 놓아기르기에 알맞은 땅이지 사람 살 땅은 아니란 의미였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시작된 제방 사업과 저수지 사업으로 지금의 땅을 만들 수 있었고 이후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성당이 건립되었다. 현재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는 함안 성당, 대산 성당, 칠원 성당이 있다.

[현황]

1. 함안 성당

1900년 마산 완월 본당 소속의 말산 공소[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359]가 설립되었고, 1923년 본동에서 중동[말산리 495-22]으로 공소를 이전하였다. 1932년 6월 5일, 마산 본당[현 마산 완월동] 소속의 공소가 함안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마산 본당의 목세영[율리오] 신부가 현 위치인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74번지로 부지를 물색한 후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프랑스인 루카(L. Lucas)[한국명 유가홍]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하였다. 유가홍 신부는 교통 관계 및 교회 발전상 성당을 현 위치에 신축하고 본당을 이전하였다. 당시 관할 구역은 경상남도 함안군, 창녕군(昌寧郡), 의령군(宜寧郡) 전역이었다. 1949년 3대 김동언[베드로] 신부 재직 시에 창녕 본당이 독립되었다. 1966년 5대 이종창[바르톨로메오] 신부 때 의령 본당이 독립되었다.

1945년 2대 김영제[요한] 신부 때 삼일 유치원이 설립되었다. 1952년에는 가야 여자 고등 공민학교를 개교하여 지역의 교육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1956년 4대 제찬규[시메온] 신부가 사제관[3층]을 신축하였다. 1957년 수녀원을 신축하여 순교 복자회 수녀들을 초빙 상주케 하였다. 1992년부터는 한국 외방 선교 수녀회가 파견되어 현재까지 본당 사목 활동을 협조하고 있다. 1997년 17대 곽준석 신부 때에 현 위치에 새 성전을 신축 봉헌하였다.

2. 대산 성당

1932년 함안 성당이 생겨나고 이듬해인 1933년 7월에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가등리에 제찬규[시메온] 신부가 가등 공소를 세운 것이 대산 성당의 시초이다. 1958년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중앙동 945번지로 공소를 이전하였고, 1966년 12월 26일 의령 성당 초대 주임 신부였던 정수길[요셉] 신부가 공소에 거주하게 되었다. 1967년 5월 3일 준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나 1970년 1월 정수길 신부가 은퇴하게 됨으로써 다시 가야 성당[현 함안 성당]이 관할하게 되었다.

1972년 성체회 분원이 설립되어 전교 수녀가 부임하게 되는데, 1976년 4월에 철수할 때까지 본당 신부 부재의 공백을 채우면서 선교에 힘썼다. 그 후 1976년 5월 준 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본당 승격 후 초대 주임 정중규[클라로] 신부가 부임하였고, 1977년 구한선[타데오] 순교자 무덤을 하기리새대 돌고개에 있는 문중벌에서 가등산으로 이장하였다. 제2대 주임 김민수[유스티노] 신부 재임 시기인 1983년 9월에 사제관을 준공하고, 새 성전 건립을 계획하게 되었다.

제4대 주임 이응석[프란치스코] 신부 재임 시기인 1985년에 구 사제관을 수리하여 회관으로 사용하였고, 1988년에 본당 소유 농장을 매각하여 그 수익금 중 일부를 가지고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에 성전 이전 부지 5,408.7㎡를 매입하였다. 제5대 주임 박두환[베네딕토] 신부가 부임한 후 1990년 7월 새 성전 신축을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1991년 1월 23일에 대지 5,408.7㎡, 건평 930.6㎡의 새 성전을 완공하고 2월 4일 교구장 박정일 주교의 주례로 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3. 칠원 성당

칠원 성당은 1916년에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운서리 죽청 부락에 마산 본당 소속의 칠원 공소로 시작하였다. 1951년에 현 성당의 자리인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 9번지로 공소를 이전 하였으며, 1955년에는 구성리 762번지의 대지 1,673.1㎡를 매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9년 1월 5일 준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 최봉원[야고보] 신부가 부임하였고, 같은 해 12월 29일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1월 31일에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998년 3월 2일 7대 허성규[베드로] 신부 때에 샛별 어린이집을 준공하였고,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소속 수녀 2명이 본당에 파견되어 전교 수녀로 활동하고 있다. 1956년 건축된 옛 공소 건물을 본당으로 사용하였으나 낡고 노후화 되어 2016년 현재 같은 자리에 성당 재건축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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