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암동 운리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52
한자 楓巖洞雲裏-堂山祭
이칭/별칭 풍암동 운리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0년대 이후 - 풍암동 운리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운리마을 입구 도로변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격년 정월 열사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흙무덤]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운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사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풍암동 운리마을 당산제는 2년마다 한 번씩 정월 열사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운리마을의 할아버지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운리마을은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음성박씨(陰城朴氏)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다. 그 뒤 파평윤씨(坡平尹氏), 함평노씨(咸平魯氏)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당산제는 과거 매년 모셨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중단될 위기에 놓였으나, 메만 올릴 것을 약속하여 당산제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고, 이후 격년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도시개발의 여파로 인해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신당/신체의 형태]

운리마을의 당산은 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한 할아버지당산으로, 지름 2m, 높이 80㎝ 정도 크기의 흙무덤이 신체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당산 바로 옆에 있는 큰 소나무에 제를 모시고 흙무덤은 헌식터로만 사용하였는데, 1976년에 나무가 고사(枯死)하자 헌식터인 흙무덤을 신체로 모시게 되었다.

[절차]

풍암동 운리마을 당산제는 정월 10일에 마을회의를 열어 화주 1명, 거화주 1명, 축관 1명, 집사 1명 등 모두 4명의 제관(祭官)을 선정하는데, 헌관은 화주가 겸한다. 화주와 제관은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며, 당산제가 간소화되면서부터는 거화주는 뽑지 않았다. 화주는 선정된 날부터 거화주와 함께 당샘을 청소한다. 당샘은 당산에서 남쪽으로 50m 떨어진 논에 있는데, 지름이 2m 정도로 안에는 석축이 있다. 제비(祭費)는 각 호당 거출한다. 제물(祭費)은 정월 13일 양동시장에서 구입하는데 돼지머리, 대추, 밤, 건포, 사과 등으로 비린 것은 장만하지 않는다. 이때 값을 흥정해서는 안 된다. 제기(祭器)는 매년 새로 구입하며, 제사를 끝낸 후 화주가 소유한다. 금줄은 정월 13일 화주와 거화주가 마을 입구, 당산 주변, 화주집 앞 등에 청죽을 세워 친다. 금토는 당산에서 화주집 앞, 당샘까지 놓아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제물의 장만은 제일(祭日) 오후에 화주집에서 하는데 당샘에서 물을 길러다 사용한다. 제사 음식은 청결히 마련하며 맛을 봐서는 안 되고 참기름과 소금으로만 간을 한다. 떡은 백설기를 하며 돼지머리는 날 것을 구입하여 화주집에서 삶는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7시에 제물을 할아버지당산으로 운반한다. 제사를 위한 행렬은 화주가 앞서고 제물, 굿꾼, 마을 사람 등이 따르는데 여자들은 굿을 볼 수가 없다. 제물은 진설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두는데, 화주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한다. 밤 11시에 이르면 거화주가 쌀을 가져와 당산 옆에서 메를 지어 올린다. 메가 올라가면 굿꾼은 징을 치며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이 소리를 듣고 각 가정에서 메를 올린다. 소지는 제관들만 하고 음복을 간단히 하는데 제관만 할 수 있다. 헌식은 돼지머리를 통째로 넣는 점이 특이하다. 헌식터 꼭대기를 깊이 파고 돼지머리를 통째로 묻은 후 납작한 돌을 덮고 그 위에 새로 파온 황토를 덮고 잔디를 입힌다. 이때 마을에서 힘이 좋고 건장한 청년 4명을 선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삽, 괭이, 곡괭이, 쇠스랑 등을 들고 서있게 한다. 이는 돼지머리에서 파란불이 나가면 못쓴다고 믿기 때문에 그 불이 못나가도록 연장을 들고 지키는 것이다. 제는 새벽 5시까지 계속되는데 밤에 마른 명태로 죽을 써서 내와 나눠 먹고 계속해서 논다. 첫닭이 울면 제가 끝난 것을 의미한다. 제가 끝나고 화주집으로 돌아와서 음식을 나눠먹고 모든 절차를 마친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축관이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

[현황]

풍암동 운리마을 당산제는 1990년대 이후 도시개발의 여파로 인해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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