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65
한자 趙在祐
영어공식명칭 Jo Jae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2월 3일연표보기 - 조재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재우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66년 3월 28일연표보기 - 조재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8년 - 조재우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조재우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재우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묘소 국립 대전 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에 의하여 계획되어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며 일어났다. 오후 2시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마산 경찰 서장과 현지 경찰들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시위 군중은 격노하여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를 시위행진하며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 16명이 도착하여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며 끝이 났다.

[활동 사항]

조재우(趙在祐)[1892~1966]는 1892년 2월 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함안 공립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함안면 사무소 서기로 일하다가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조재우는 3월 19일 평상시 대로 함안면 사무소에 출근하였다. 점심을 먹고 비봉산의 고천제와 태평루의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찰 주재소로 향하였다. 조재우의 활동은 재판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재판장은 "피고 조재우는 함안읍 소요 시에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주재소를 습격할 때 폭도들을 주재소로 불러들였고 또 폭도들을 선동하고 지휘하였다"라고 판시하였다. 구마다니[熊谷] 대서 소장은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여 만세를 크게 부르도록 하였고, 군중을 각 관청에 침입하게 한 인물"이라고 증언하였다. 조재우함안읍 만세 운동 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선고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66년 3월 28일 향년 74세로 작고하였다.

[묘소]

조재우는 대전 현충원 애국 지사 묘역 제3-381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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