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71
한자 趙漢輝
영어공식명칭 Jo Hanhwi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12월 15일연표보기 - 조한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한휘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0월 16일 - 조한휘 신간회 함안 지회 회장 취임
몰년 시기/일시 1935년 10월 21일연표보기 - 조한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조한휘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조한휘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한휘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활동지 경상남도 함안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신간회 함안 지회 회장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함안읍 만세 운동은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 거행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2시 3,000여 명은 경찰 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마산 경찰 서장과 현지 경찰이 출동하여 무력 진압하려 하자 군중은 경찰 주재소의 공문서와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들에게는 독립 만세를 외치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군중은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로 시위행진하여 그곳의 건물도 파괴하였다. 하지만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 16명이 도착,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주동자를 검거하며 함안읍 만세 운동은 끝이 났다.

[활동 사항]

조한휘(趙漢輝)[1893~1919]는 1893년 12월 15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모의하였으며, 준비 과정에서 이희석(李喜錫)·이찬영 등과 함께 독립 선언서를 등사하였다. 의거 당일 태평루에서 독립 선언식을 마치고 경찰 주재소와 군청을 향해 시위행진할 때 선두에서 군중을 지휘하였다. 조한휘의 의거 활동이 재판 기록에 잘 남아 있다. 재판장은 "피고 조한휘는 함안읍 소요 시에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다른 폭도들을 선동하여 함안 우체국에 투석하고 유리창을 파괴하였다"라고 판시하였다.

조한휘는 오호야시 순사 부장에게 독립 운동 증명서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고, 석방 후에도 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6년 3월 함안 군청 이전 반대 모임의 임시 의장을 지냈고, 같은 해 7월부터 동아일보사 함안 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7년 10월 16일 신간회 함안 지회를 창립하여 회장이 되어 민족 운동을 이끌었다. 1935년 10월 21일 42세로 사망하였다. 아들로 조광래(趙洸來)가 있다.

[상훈과 추모]

조한휘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이 인정되어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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