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소작 쟁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39
한자 咸安 小作 爭議
영어공식명칭 Tenancy Dispute of Ham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민 운동
관련 인물/단체 양창준|변면섭|안봉중|박승표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의 소작농들이 지주들에 맞서 벌인 농민 운동.

[개설]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발생한 소작인과 지주, 소작인 간에 발생한 분쟁으로 함안 농민 조합이 분쟁의 해결을 위해 적극 개입해 농민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경과]

1. 진주 일신 여자 고등 보통학교 소관의 토지를 둘러싼 소작 쟁의

1931년 함안군 군북면과 죽남면의 양 면에 있는 진주 일신 여자 고등 보통학교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소작권 중 30여 건을 사용인 정 모 씨가 금품 수수와 기타 정실 관계 때문에 이전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함안 농민 조합 간부와 진주 일신 여자 고등 보통학교 측은 여러 차례 절충을 거쳐 소작권을 맡은 소작인들에게 문서로 소작권 취소를 통고하고 소작 쟁의를 해결하였다.

2. 남해 척식 회사 함안 농장 소작 쟁의

1931년 가을 남해 척식 회사 함안 농장에서 소작인 700명에게 비료 대금을 부당하게 계산하여 폭리를 취하는 일이 발생해, 함안 소작인 조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창준·변면섭·안봉중·박승표 4인은 검거되고 양창준은 서울로 압송되기도 하였다.

3. 함안 제2 수리 조합 소작 쟁의

1931년 봄 함안 제2 수리 조합 내 일부 토지를 총독부가 매입하였는데 그 토지에 대한 수확은 수리 조합에게 일임하였다. 이에 소작인 수백 명은 총독부가 매입한 토지가 국토로 변경되었으므로 다른 국토와 같이 5할의 소작료를 받을 것으로 믿었지만 수리 조합에서는 6할의 소작료를 받는다고 해 수백 명의 소작인들이 이에 응할 수 없어 결의서를 작성하고 서명 날인한 후 단결된 행동을 예고하였다. 그러나 수리 조합에서는 1931년 11월 6할의 소작료를 금전으로 환산해 고지서를 발부하였다.

[의의와 평가]

함안 지역의 많은 소작인들의 소작료와 소작권 이동 등의 문제를 농민들이 직접 해결하기 위해 검거를 감수하면서 저항하였고 함안 농민 조합도 소작인들의 권익을 위해 적극 활동함으로써 농민 개개인뿐만 아니라 조직된 조합에서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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