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 비료 대금 징수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12
한자 南海 拓植 株式會社 咸安 農場 肥料 代金 徵收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에서 비료 대금을 부당하게 계산하여 폭리를 취하는 사건 발생
성격 농민 운동
관련 인물/단체 조진규|조문극|양창준|변면섭|안봉중|박승표|함안 농민 조합

[정의]

1931년 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의 비료 대금 과다 징수 사건.

[역사적 배경]

1926년 10월 26일 조진규, 조문극 등이 주축이 되어 함안 소작인 조합을 결성하였다. 함안 소작인 조합은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퇴치를 목표로 농민 야학과 순회강연 등을 실시하였다. 이후 1927년 7월 16일에 대회를 개최하여 함안 소작인 조합에서 함안 농민 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함안 농민 조합은 1931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였다.

[경과]

함안 농민 조합의 주된 활동은 함안 지역 내에 농민 조합 지부 결성이었다. 1931년 3월 10일 함안 농민 조합은 일제의 숱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가야 농조 지부와 같은 시기 군북 지부를 설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소작인들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서서, 진주 일신 여자 고등 보통학교 소관의 소작권 이동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이후 함안 농민 조합 줄곧 신구 소작인들의 소작권 분쟁 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가을 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에서 소작인 700여 명에게 비료 대금을 부당하게 계산하여 폭리를 취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의 수습을 위해 함안 농민 조합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결과]

사태 수습 과정에서 양창준·변면섭·안봉중·박승표가 검거되었고, 양창준은 서울로 압송되기까지 하였다. 양창준은 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의 비료 대금 과다 징수에 항의하는 농민 시위를 선동, 배후 조종하였다는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후반 청년 동맹과 함안 농민 조합에서 성장한 새로운 청년층들이 민족 운동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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