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 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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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운곡리에서 지명과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덕암(德岩)과 무산(武山)」의 전반부는 마을 뒤산에 많은 악바위를 방치해 두면 마을이 불길하다고 믿어 이 재앙을 물리치고자 '덕이 큰 바위'의 의미를 가진 덕암으로 바꾸었다는 암석 유래 전설이고, 후반부는 진양 강씨가 당자리[꿩설]의 명당에 묘를 썼기 때문에 집안이 흥하여 후대에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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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주도복의 시문집. 주도복(周道復)[1709~1784]의 자는 여강(汝剛), 호는 감은재(感恩齋)이며,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부인은 좌랑 강재후(姜載後)의 딸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며, 아들은 주봉조(周鳳朝)·주봉익(周鳳翊)·주봉양(周鳳陽) 등이다. 주도복은 1709년 10월 18일에 함안 칠원의 무기리(舞沂里)에 출생했다. 천성과 도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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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정재현의 시문집. 정재현(鄭再玄)[1765~1846]의 자는 화신(和信), 호는 강재(剛齋)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5대조 정문례(鄭問禮)가 처음으로 진주에서 함안 죽계로 이거하였으며, 백이산 아래 지두촌(池頭村)에 정자를 지었다. 아버지 장만교(鄭萬僑)는 이계(夷溪)황도익(黃道翼)[1678~1752]에게 수학하였으며, 황도익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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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간행된 재령 이씨 입향조 이중광의 후손인 이현재, 이세태, 이세후의 시문집. 이현재(李玄栽)[1620∼1674]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자는 배원(培元), 호는 죽촌(竹村)이다. 진주(晋州) 지수면(智水面) 청원리(淸源里)에서 태어났다. 고려 충절신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예로 아버지는 행정(杏亭)이중광(李重光)이며, 어머니는 신갑의 딸인 영산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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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조씨의 일원인 조용화의 시문집. 조용화(趙鏞和)[1907~1986]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태형(泰亨), 호는 청계(聽溪)이다. 조선 중기 함안에 거주하던 유학자 조임도(趙任道)의 후손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괴진리에서 태어났다. 의령에 거주하다가 김해에 우거하기도 하였다. 묘소는 함안군 송정 뒷산의 해좌 언덕에 있다. 조용화의 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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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병의 문집. 이병(李柄)[1876~1950]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두칠(斗七), 호는 평재(平齋)이다. 양졸정(養拙亭)이휴복(李休復)의 10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와(愚窩)이상지(李尙志)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이태순(李泰純)이며, 어머니는 조계식(趙啓植)의 딸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부인은 강탁(姜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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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정려의 문집. 안정려(安鼎呂)[1871~1939]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국중(國重), 호는 회산(晦山)이다. 할아버지는 각산(覺山)안평(安泙)이고, 아버지는 후각당(後覺堂)안상기(安相琦)로, 만성(晩醒)박치복(朴致馥)의 제자이다. 어머니는 강봉택(姜鳳宅)의 딸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부인은 박봉채(朴鳳采)의 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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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있는 개항기 묘비. 박정화 묘비(朴精華墓碑)는 박정화와 그의 처 진양 강씨(晉陽姜氏)의 묘비로 1906년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화 묘비는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디디미못 북쪽의 구릉에 있다. 묘에서 보았을 때 우측에 묘비가 있다. 묘비는 지붕 모양의 가첨석(加檐石)과 비신(碑身), 받침돌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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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황암(篁巖).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화(朴精華)이고, 할아버지는 박유(朴㽔)이다. 아버지는 박희삼(朴希參)이며, 어머니는 강신범(姜信範)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침(李琛)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이일민(李逸民)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아들은 박율(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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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맹사(孟思), 호는 송암(松嵓). 단종(端宗) 때 홍문관 저작을 지낸 추호(秋湖)박앙(朴盎)이 수양 대군(首陽大君)의 왕위 찬탈 후 벼슬을 버리고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平廣) 마을에 은거한 후, 그 후손들이 세계를 잇고 있다. 고조할아버지는 박기명(朴基命)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화(朴精華)이며,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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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훈경(薰卿), 호는 만성(晩醒). 7대조는 병조 참판을 지낸 박진영(朴震英)[1569~1641]이다. 아버지는 박준번(朴俊蕃)이고, 어머니는 최규찬(崔奎燦)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와 곽심춘(郭心春)의 딸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현빈(李賢賓)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강창범(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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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함안의 세거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초기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다. 조선 중기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와 매죽헌(梅竹軒)이명호(李明怘)의 「중수 향안 서(重修鄕案序)」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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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형(汝衡), 호는 도천(陶川)·삼수헌(三秀軒). 할아버지는 안정옥(安鼎鈺)이고, 아버지는 안효중(安孝中)이다. 첫 번째 부인은 강익흠(姜益欽)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조성섭(趙性燮)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3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안철준(安哲濬), 둘째 아들은 안극준(安克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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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형(汝衡), 호는 도천(陶川)·삼수헌(三秀軒). 할아버지는 안정옥(安鼎鈺)이고, 아버지는 안효중(安孝中)이다. 첫 번째 부인은 강익흠(姜益欽)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조성섭(趙性燮)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3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안철준(安哲濬), 둘째 아들은 안극준(安克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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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공직(孔直), 호는 쌍봉(雙峯).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허겸(李許謙)이다. 이허겸의 17세손인 경상 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함안 평광(平廣)[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 터를 정해 입향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관(李慣)이고, 할아버지는 이호맹(李虎孟)이다. 아버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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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공직(孔直), 호는 쌍봉(雙峯).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허겸(李許謙)이다. 이허겸의 17세손인 경상 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함안 평광(平廣)[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 터를 정해 입향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관(李慣)이고, 할아버지는 이호맹(李虎孟)이다. 아버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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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여택(汝宅), 호는 수구재(守口齋)인데 ‘수구여병(守口如甁)’의 의미로 자호하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이조 참판에 추증된 주문보(周文俌) 때부터 함안군 칠원읍으로 이주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재(愼齋)주세붕(周世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구봉(龜峯)주박(周博)이며,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연헌(蓮軒)주낙창(周樂昌)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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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사람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은 부계(父系)의 혈족들이 모둠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촌(同姓村)', '동족 부락', '동족 마을', '동성 마을' 등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대체로 함안군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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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사람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은 부계(父系)의 혈족들이 모둠살이를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촌(同姓村)', '동족 부락', '동족 마을', '동성 마을' 등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대체로 함안군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함안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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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의 향권 장악을 둘러싼 재지 세력과 신흥 세력 간의 대립. 함안 지역에서 남당과 북당이 형성된 것은 북당의 영수 조윤수가 향권을 장악하려는 데서 기인한다. 본래 남당과 북당은 당파적 색깔에 의해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윤수가 함안 북쪽 내대산면에 거주하였고, 그의 반대파들 대부분이 남쪽에 거주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호방(戶房)을 중심으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