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19
한자 朴致馥
영어공식명칭 Bak Chibok
이칭/별칭 만성(晩醒),훈경(薰卿)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4년연표보기 - 박치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60년 - 박치복 백련재 짓고 강학
활동 시기/일시 1882년 - 박치복 진사시에 합격
몰년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박치복 사망
출생지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수학|강학지 백련재 -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묘소|단소 박치복 묘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밀양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개설]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훈경(薰卿), 호는 만성(晩醒). 7대조는 병조 참판을 지낸 박진영(朴震英)[1569~1641]이다. 아버지는 박준번(朴俊蕃)이고, 어머니는 최규찬(崔奎燦)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와 곽심춘(郭心春)의 딸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현빈(李賢賓)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강창범(姜昌範)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아들은 박호선(朴祜善)이고, 사위는 정용석(鄭龍錫)과 김영구(金永龜)이다.

[활동 사항]

박치복(朴致馥)[1824~1894]은 관례를 하기 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대평(大坪)으로 유치명(柳致明)을 찾아갔고, 김흥락(金興洛)과도 교유하였다. 1860년(철종 11) 합천군 삼가현황매산(黃梅山) 기슭에 백련재(百鍊齋)를 짓고 학문에 정진하는 한편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1864년(고종 1) 허전(許傳)이 김해 부사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자 아우 박치회(朴致晦)와 함께 가서 배웠다. 이때부터 종신토록 스승으로 모시며 존경하였다. 1882년(고종 19)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치복은 유치명을 통해 퇴계 학파의 학설을 수용하였고, 허전을 통해 근기 남인계 성호학의 실용주의를 수용하였다. 그는 전통의 학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치용의 학문을 겸하였다. 또한 남명학에 대한 관심과 경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가 전국 각지에 있는 남명(南冥)조식(曺植)의 사적지를 방문하고 추모하는 글을 지은 점과, 1888년(고종 25) 조식의 문묘 종사를 위한 상소에 소두가 되었다는 점을 통해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저서로 16권 9책의 『만성집(晩醒集)』이 있다.

[묘소]

1894년(고종 31)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 연동에 안장했다가, 1913년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의 용화산 선영으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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