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수
-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조원규의 문집. 조원규(趙元奎)[1905~1967]의 초명은 원규(元奎)였는데, 나중에 한자를 바꾸어 원규(元珪)로 하였다. 자는 순부(順夫)이며, 호는 경산(景山)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생육신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10대조 송재(松齋)조면도(趙勉道)는 한강(寒岡)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조부는 난파(蘭坡)조면식(趙冕植)이다...
-
선대가 함안에 살았고 창원에 거주했던 안인석의 문집. 안인석(安寅錫)[1838~1908]의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하건(夏建), 호는 만우(晩愚)이다. 창원 광려산 아래 두척(斗尺)에서 태어났다. 안인석의 13대조는 조선중종 때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로 이거하였으며, 그의 9대조는 다시 창원으로 옮겨 살았다. 묘소는 함안의 검암산에 있다. 안인석의 손자 안기호(...
-
1957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굉규의 문집. 조굉규(趙宏奎)[1857~192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태원(泰元), 호는 서고(西皋)이다.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성행(趙性行)이고, 어머니는 안병순(安秉淳)의 딸인 순흥 안씨(順興安氏)이다. 부인은 이민(李玟)의 딸인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신창리(新...
-
17세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영휘의 시문집. 조영휘(趙永輝)[1706~1781]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완보(完甫), 호는 청희당(淸羲堂)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기 조려(趙旅)의 후손으로 함안에 세거한 집안의 일원이다. 조영휘가 생전에 남긴 글이 적지 않았지만, 조영휘의 글을 보관하고 있던 후손가...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성균관 유도회의 함안 지역 지부. 성균관(成均館)은 한일 병합 후 일제에 의해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었다가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성균관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고, 같은 해 10월 전국의 유림 2,500여 명이 성균관 명륜당에 모여 유도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1945년 11월 심산(心山)김창숙(金昌淑)이 전국의...
-
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치행(致行), 호는 희재(希齋). 시조 안방걸(安邦傑)의 12세손인 안수(安綏)가 함안군 안인리(安仁里)에 정착하였다. 졸암(拙庵)안여거(安汝居)가 현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로 이주하면서 광주 안씨(廣州安氏)는 대대로 영동리에 살게 되었다. 교관에 추증된 도곡(道谷)안정(安侹)의 10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민중(安珉重...
-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