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85
한자 西皋 遺稿
영어공식명칭 Seogoyugo
이칭/별칭 『서고집(西皋集)』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신창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 『서고 유고』 간행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구 성균관로 25-2[명륜3가 52-16]
소장처 전남 대학교 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
성격 문집
저자 조굉규
간행자 조용수
권책 4권 1책
행자 11행 24자
규격 19.4×29.1㎝|16.2×21.0㎝[반곽]
어미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서고 유고(西皋遺稿)
판심제 서고 유고(西皋遺稿)

[정의]

1957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굉규의 문집.

[저자]

조굉규(趙宏奎)[1857~192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태원(泰元), 호는 서고(西皋)이다.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성행(趙性行)이고, 어머니는 안병순(安秉淳)의 딸인 순흥 안씨(順興安氏)이다. 부인은 이민(李玟)의 딸인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신창리(新昌里)에서 태어났다. 1884년 동약(洞約) 9조를 발표하여 풍속을 쇄신하였다. 1908년 백이산 자락에 문창재(文昌齋)를 지어 강학하였다. 1919년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여 독립 선언문을 필사해 와서 제자들에게 전달하고, 서숙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묘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于巨里)가재산(可在山) 간좌(艮坐)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서고 유고(西皋遺稿)』는 1930년의 화재로 대부분의 원고가 소실되자, 조굉규의 아들 조용수(趙鏞修)가 남은 원고를 여묘로 옮겨 보관하였다. 이후 1931년 정명계(正明契)를 조직하여 문창재(文昌齋)를 사들여 ‘서고 정사(西皋精舍)’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조용언(趙鏞彦)과 함께 찬술문을 요청하여 원고와 함께 편집하고, 1957년에 간행하였다. 『서고집(西皋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4권 1책의 석판본(石版本)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19.4㎝, 세로 29.1㎝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2㎝, 세로 21.0㎝이다. 1면 11행에 1행의 자수는 24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서고 유고(西皋遺稿)'로 되어 있다. 국립 중앙 도서관,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전남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성순영(成純永)의 「서고 선생전(西皋先生傳)」으로 시작한다. 권1에는 시(詩) 59제(題), 서(書) 20편, 발(跋) 3편, 유사(遺事), 제문(祭文) 6편, 고유문(告由文) 1편, 잡저(雜著) 1편이 실려 있다. 권2 부록에는 165인의 만장(挽章), 15인이 쓴 제문이 실려 있다. 권3 부록에는 가장(家狀), 행장(行狀), 유사(遺事), 묘갈명이 실려 있다. 권4 부록에는 조긍섭(曺兢燮)이 지은 「서고 정사기(西皋精舍記)」, 하성재(河性在)의 「문풍헌명(聞風軒銘)」, 조규철(曺圭喆)의 「망모헌기(望慕軒記)」가 실려 있다. 책 뒤에는 조용언의 「유고 고성문(遺稿告成文)」, 서고 정사 위치도, 조열제(趙說濟)의 「서고 유고발」과 조용수가 지은 소지(小識)가 있다.

[의의와 평가]

『서고 유고』는 시와 잡저 「동규 구조(洞規九條)」를 통해 신창리의 풍속을 쇄신하기 위해 노력한 조굉규의 활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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