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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지방관의 폭정에 맞서 칠원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1868년(고종 5) 가을 경상도 칠원에서 현감 조현택의 부정과 탐학(貪虐)에 대한 저항으로 농민 항쟁이 일어났다. 칠원 농민 항쟁의 직접적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다. 칠원의 농민들은 황상기(黃上基)와 이도여, 전홍이 등의 주도 아래 통문(通文)을 돌려 동리별로 장정을 동원하였고, 이에 불응할 경우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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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월 12일 함안 지역 향전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일어난 농민 항쟁. 조선 후기 사회는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에 따른 양반 중심의 향촌 사회 질서가 변화해 가고 있었다. 특히 향촌 사회에서 재지 세력 사이에 각종 향권을 둘러싼 향전(鄕戰)이 발생하였다. 함안 지역의 향전은 남당과 북당의 대립에서 비롯하였다. 이는 북당인 조윤수가 반벌(班閥) 식자층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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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초부터 4월 초순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독립 만세 운동. 함안 지역에서 일제에 강력하게 저항 운동이 일어난 것은 1894년 민란과도 연결된다. 함안 지역 민중들이 탄압과 수탈에 맞서 역량이 발휘된 것으로 의병 운동, 애국 계몽 운동, 비밀 결사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 특히 토지 조사 사업 등 일제의 탄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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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4월에 걸쳐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일제의 지배에 항거해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지역에서 발생한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인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함안 지역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인근 지역까지 만세 운동이 전파되었으며 평화 시위에서 차츰 공세적인 시위운동으로 변해갔다. 시위운동에 참가한 인적 구성은 기독교와 경명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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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의 비료 대금 과다 징수 사건. 1926년 10월 26일 조진규, 조문극 등이 주축이 되어 함안 소작인 조합을 결성하였다. 함안 소작인 조합은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퇴치를 목표로 농민 야학과 순회강연 등을 실시하였다. 이후 1927년 7월 16일에 대회를 개최하여 함안 소작인 조합에서 함안 농민 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함안 농민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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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 농민 운동 단체. 신간회(新幹會) 해소 이후 청년 운동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대거 농민 조합 설립의 주축이 되었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도 함안 청년회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에 의해 함안 농민 조합이 결성되어 농민들의 권익 보호와 농민 계몽에 앞장섰다. 함안 농민 조합의 활동은 신간회 지회 해소를 전후한 1931년 이후부터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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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후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함안 농민 조합을 결성해 진행한 운동. 1920년대 후반 이후 함안군 군북면, 법수면 지역을 중심으로 수리 조합이 만들어지고 관개 시설이 확충되면서 이 지역에서 농민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함안 지역은 신간회(新幹會)가 해산되면서 농민 조합 운동이 사회 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1926년 10월 22일 함안 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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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 지배의 모순을 타파하고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함안 지역의 실천 활동. 1900년대 근대적 학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함안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9일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 협동조합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함안 지역은 1894년 민란을 통하여 개항 체제 아래서 빚어지고 있던 봉건적 모순과 새로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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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함안 출신의 항일 운동가. 함안의 독립운동가는 3·1 운동과 3·1 운동의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을 통해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9일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함안 지역의 연속적이고 공세적인 시위가 잇달아 일어났다. 함안 지역에서 전개된 3·1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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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청년회가 주도하여 설립 운영한 극단. 1925년 이후 재창립 된 함안 청년회가 운영한 극단으로서, 함안 유치원과 노동 야학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지역 유지들의 발기로 1920년에 설립된 함안 청년회가 구성원들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 그 활동이 미미해지게 되었다. 이에 1925년 11월 29일 변화를 모색하는 혁신 대회가 함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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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10년 함안 지역에서 일어난 국권 회복 운동. 애국 계몽 운동은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乙巳條約)에 의하여 국권이 박탈되고 일제의 식민지화가 노골화 되는 시점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이다. 함안 지역에서는 대한 협회(大韓協會) 지부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애국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국권 회복 운동의 일환인 애국 계몽 운동이 활성화 된 이유는 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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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학술 강습회. 기본적으로 야학(夜學)은 비정규적인 교육 기관에서 하는 근대 교육을 지칭한다. 1920년대 이후 야학회는 실력 양성 운동의 확산에 따라 야학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13년 이후, 함안 지역의 경우 사립 학교와 더불어 야학이 함안 지역 내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일조하였다. 사립 학교와 야학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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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서 1947년 사이 인민 해방군에 의한 함안 및 부산 지역의 공산화 기도 사건. 인민 해방군(人民解放軍)은 남조선 노동당(南朝鮮勞動黨)[남로당]의 강진(姜進)·문갑송(文甲松)·한인식(韓麟植)[또는 한진식] 등을 수반으로 1946년 2월부터 조직되어 비밀리에 활동하였다. 이들은 김일성(金日成)·김두봉(金枓奉)·허가이(許哥而) 등의 연락과 지령을 받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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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함안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 함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저항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3·1 운동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어 일제 무력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식민지 민족 해방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로 상봉면·하봉면·사봉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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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9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칠북면 이령리 연개 장터 만세 운동은 배동석의 역할이 주요하였다. 배동석은 이령 교회의 장로 김세민의 장녀인 김복남과 혼인하였고, 김세민의 아들 김정오와는 처남 매부 간이다. 배동석은 서울 학생층의 주요 인사로서 민족 대표 진영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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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함안 농민 조합 군북 지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지세와 모세 철폐 운동. 함안군의 농민은 경상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경영 규모가 작고 논밭에서 나는 곡식의 양이 적어 궁핍한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지주들이 지세(地稅) 및 공과금을 소작농들에게 전가해 소작료의 증가를 꾀하기도 하고 소작권이 자주 변경되어 소작농의 생활이 불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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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산미 증산 계획에 의하여 개간된 함안 지역의 농지. 함안 농장은 원래 저습한 잡종지였는데, 일제 강점기의 산미 증산 계획에 따라 농지로 개간되었다. 1930년대에 제방이 부실하여 제방 보강 공사를 하여 2016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함안 농장은 북쪽의 남강 연안으로부터 동쪽에서 남쪽에 이르는 삼면이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들판이다. 구역은 가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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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의 소작농들이 지주들에 맞서 벌인 농민 운동.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발생한 소작인과 지주, 소작인 간에 발생한 분쟁으로 함안 농민 조합이 분쟁의 해결을 위해 적극 개입해 농민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1. 진주 일신 여자 고등 보통학교 소관의 토지를 둘러싼 소작 쟁의 1931년 함안군 군북면과 죽남면의 양 면에 있는 진주 일신 여자 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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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3·1 운동은 이후의 민족 해방 운동이 노동, 농민, 여성, 청년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지배 엘리트들이 주축이 된 청년 단체들이 대거 생겨났다. 1920년 12월 1일 120여 개의 청년 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에서 조선 청년회 연합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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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함안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을 중심으로 운영된 지방 자치 회의. 일반적으로 향회(鄕會)는 조선 시대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이 중심이 된 지방 자치 회의였으나,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이 점차 변하게 되었다. 18세기~19세기 이후 향회는 주로 지방의 부세(賦稅) 수취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기구로서 지방 수령(守令)의 부세 자문 기구의 역할을 담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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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의 향권 장악을 둘러싼 재지 세력과 신흥 세력 간의 대립. 함안 지역에서 남당과 북당이 형성된 것은 북당의 영수 조윤수가 향권을 장악하려는 데서 기인한다. 본래 남당과 북당은 당파적 색깔에 의해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윤수가 함안 북쪽 내대산면에 거주하였고, 그의 반대파들 대부분이 남쪽에 거주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호방(戶房)을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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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현재까지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 역사.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함안의 인구, 지역, 행정, 사회 문화 등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변화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은 현재 가야읍(伽倻邑)을 중심으로 함안면(咸安面), 군북면(郡北面), 법수면(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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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일어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 1923년 4월 24일 진주에서 처음 조직된 형평사(衡平社)는 특정 계급인 백정(白丁)의 차별 철폐와 인권, 평등을 주장하였다. 진주에서 창립된 이후 경상남도 지방에 이어 호남·영남·중부 지역에서 형평사 지부가 조직되는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조직이 확대되었다. 백정은 천민 계급이었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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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 시기 경상남도 함안을 비롯한 남부 지방 각지에서 활동한 무장 농민군. 18~19세기에 걸쳐 농업 생산력과 화폐 경제의 발전으로 향촌 사회가 변화되면서, 향촌 내의 재지(在地) 세력 간에 향권을 둘러싼 소위 향전(鄕戰)이 발생하였다. 특히 이방의 차임(差任)과 포흠(逋欠)을 둘러싼 향전은 당시 수령-이향(吏鄕) 세력이 연결된 수탈 구조를 표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