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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96
한자 姜大漢
영어공식명칭 Gang Daeh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장혜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10월 23일연표보기 - 강대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강대한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강대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강대한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강대한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강대한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강대한(姜大漢)[1886~1948]은 1886년 10월 2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강현중(姜賢中)·강경중(姜璟中)이 있고, 손자는 강호섭(姜鎬燮)·강호진(姜鎬珍)이 있다. 1919년 3·1 운동이 발생하자 함안에서도 거사하기로 하여 태극기와 선언문을 준비하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이 계획하였다. 실질적인 지도자는 이희석(李喜錫)으로, 안지호(安知鎬)와 함께 의거 준비를 지휘하였다. 3월 15일 동지들이 협의한 후 조병흠·한관렬 등이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고 한종순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박노일(朴魯一)·김상집(金祥集)·조병대·백낙삼(白樂三)·안갑중 등은 인근의 군중을 동원하였다.

함안 장날이던 1919년 3월 19일 오후 1시경 비봉산에서 고천제를 올리고 난 후 군중은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모여들었다. 오후 2시경 이희석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3,000여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군중은 함안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또한 우체국, 함안 심상 소학교, 함안 공립 보통 소학교, 함안 공립 보통학교, 등기소 등도 공격하였다. 군중은 마산 경찰 서장 기타무라[北村]와 함안 경찰서 순사 부장 오하야시[大林]를 붙잡아 독립 만세를 부르도록 하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된 대규모 의거로 마산 지방 법원 원심에 회부된 사람만 63명이었다. 이 수치는 단일 시위 운동으로는 다른 의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강대한도 이때 체포되어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소요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 받았다. 같은 해 8월 20일 대구 복심 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강대한은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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