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노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263
한자 媤-
영어공식명칭 Song of Leading a Hard Married Lif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9년 - 「시집살이 노래」1 김월례[여, 70세]로부터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9년 - 「시집살이 노래」2 장관진이 서경년[여, 64세]으로부터 채록
채록 시기/일시 2001년 - 「시집살이 노래」3 함안 문화원 향토 문화 연구소에서 박성재[남, 65세]로부터 채록
채록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채록지 도동 마을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지도보기
채록지 원촌 마을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지도보기
성격 민요|부요
기능 구분 내방요
박자 구조 4․4조의 4음보 율격
가창자/시연자 김월례[여, 70세]|서경년[여, 64세]|박성재[남, 65세]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시집살이의 고단함과 애환을 노래한 내방요.

[개설]

「시집살이 노래」는 남편, 시부모, 시누이 등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다양한 갈등과 감정을 시집간 여자의 입장에서 불리는 내방요(內房謠)이다.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공감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전승되어 부요(婦謠)의 핵심적 위상을 차지하는 노래이다. 함안의 「시집살이 노래」는 매운 시집살이를 한탄하고, 시집을 뛰쳐나와 바랑을 메고 동냥 다니는 노래를 하기도 하며, 곱게 키워져서 남의 집으로 가면서 눈물 흘리는 가련한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시집살이 노래」는 전문적인 소리꾼이 아닌, 여성이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보편적 민요로 시집간 여자의 입장에서 불리는 민요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경상남도에서 간행한 『향토 문화지』-함안 편에 실려 있던 「시집살이 노래」1은 1989년 2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주민 김월례[여, 70세]로부터, 「시집살이 노래」2는 1989년 2월 부산 대학교장관진 교수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원촌 마을 주민 서경년[여, 64세]으로부터, 「시집살이 노래」3은 2001년 12월 함안 문화원 향토 문화 연구소에서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주민 박성재[남, 65세]로부터 각각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4·4조 중심의 4음보격인 「시집살이 노래」는 사촌 자매간의 대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시집살이의 어려움이 소박하고도 간결한 언어로 압축되어 있다. 그 문체나 수사(修辭)가 굳이 유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평민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표현에 있어서는 반복·열거·대조 등 다양한 기법에 해학적이며 풍자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길쌈이나 바느질, 밭매기와 같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을 하는 동안에 서사적 내용을 갖춘 긴 노래를 읊조리는 식으로 부르거나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서정 민요로 부르는데, 혼자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용]

「시집살이 노래」1

성아성아 사촌성아/ 시집살이 어떻더노/ 좋기사야 좋다마는/ 도레도레 도레판에/ 수저놓기 어렵더라/ 주어벗은 시아재비/ 말하기도 어렵더라/ 둥글둥글 수박식기/ 밥담기도 어렵더라/ 앞밭에다 고추심고/ 뒷밭에다 단초심어/ 단초꽃이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맵더라/ 전생에 무슨죄로/ 여자일신 되었난고/ 여자팔자 상그러워/ 타향땅에 나여기왔네/ 타향땅에 들어서니/ 산도설고 물도설다/ 산설고 물설은곳에/ 어이어떻게 살아볼꼬.

「시집살이 노래」2

시집가던 사흘만에/ 밥이라꼬 주는 것은/ 사발 눈에 볼라 주네/ 사흘만에 밭매러 가라해서/ 밭을 한골 매고 두골 매고/ 점심 차리러 돌아왔네/ 점심 차리러 돌아오니/ 시금시금 시어머니/ 아가아가 며늘아가/ 그것도야 일이라고/ 점심챔이 돌아왔나/ 뒷가래 똥가래라도 걸쳐주라/ 아무래도 못 살아서/ 삼단 같은 요 내 머리 단발하고/ 여덟 폭 처마로/ 주름주름 따가지고/ 한 폭은 고깔하고/ 네 폭은 바랑집고/ 집집마다 다님서로/ 동냥 주소 동냥 주소/ 이 어린 상 동냥 주소.

「시집살이 노래」3

가소롭다 가소롭다/ 여자 인생 가소롭다/ 전생에 무슨 죄로/ 여자 몸이 되었는고/ 부모동기 멀리 하고/ 생면부지 남의 집에/ 이십전에 출가하여/ 부모은공 생각하니/ 태산이 가벼웁고/ 하해도 엷은듯다/ 십삭으로 배를 지어/ 딸을 분만하니/ 주옥같이 사랑하며/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키우실제/ 철철의복 곱게 지어/ 몸간수도 정히 하고/ 육칠세 자라나니/ 비단명주 짐자질과/ 마포목면 물레질을/ 모름있게 가르칠제/ 어언간 이내 몸이/ 십오륙세 자라나서/ 자식사랑 우리 부모/ 어진 사위 가질려고/ 처처에 구혼하니/ 천로인지 밀양 박씨/ 반벌도 좋거니와/ 가사도 풍족하며/ 낭군 또한 준수하다/ 양부모 갖춰있고/ 가내도 흥성하다/ 청혼허혼 감래하며/ 모월 모일 택일하여/ 주인 영서 좋은 날에/ 연친을 별러놓고/ 내외 빈빈 모여앉아/ 음식 감찰 물목이라/ 삼일 후에 상온지라/ 상의도 넉죽이요/ 하의도 넉죽이라/ 대발 닷단 고강대네/ 금옥지환 반상귀명/ 검은 봉채 갖춰있고/ 지포 목포 시백포도/ 장롱 목옹 채워 있네/ 신행날이 다가서니/ 우리 부모 날 키워서/ 백리 밖에 출가하니/ 할 말도 많거니와/ 주선하기 분주하여/ 말씀 한번 못해보고/ 허둥지둥 지내가며/ 하인도 단속하고/ 짐 바리도 실어내니/ 눈물 흘러 강이 되고/ 피가 흘러 뼈가 녹네/ 가마 안에 들어가니/ 어린 동생 눈물 흘러/ 옷깃을 다 적신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통 사회에서 여자의 삶은 질곡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시집살이 노래」에는 인습에 얽매인 과거 대가족 제도의 비합리적 모순을 보여 주며, 가족 관계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민속을 섬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 조선 초기에서 후기로 내려올수록 여성의 지위가 낮아지는 상황 속에서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표현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평민 여성의 억울함과 함께 내면에서 분출되는 분노와 각성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황]

함안군은 밭농사가 많은 지역으로서 「시집살이 노래」의 종류가 풍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들의 기억 속에 존재할 뿐 직접 구연될 기회는 많지 않다. 밭매기나 길쌈 등과 같은 작업 환경이 사라졌기도 하지만 시집살이에 대한 공감대가 예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여탄요(女歎謠)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노래가 「시집살이 노래」이다. 이것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전통 사회의 여성이 나름의 방식으로 말하기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만들어 낸 문예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집살이 노래」에는 남성 중심의 유교적·봉건적 사회의 굴레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핍진하게 표출되어 있다. 자기 감정의 표출 기회가 봉쇄되어 있던 전통 사회에서 「시집살이 노래」는 여성들이 고단한 시집살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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