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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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善秀 |
영어공식명칭 | Jo Seonsu |
이칭/별칭 | 화언(華彦),화강(華岡),동애(東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영숙 |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화언(華彦), 호는 화강(華岡)·동애(東厓). 첫 번째 부인은 안효연(安孝淵)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로 자식이 없었다. 두 번째 부인은 전수록(全壽祿)의 딸 경산 전씨(慶山全氏)로 슬하에 아들 다섯 명을 두었다. 큰아들은 조성국(趙性國), 둘째 아들은 조성숙(趙性宿), 셋째 아들은 조성교(趙性敎), 넷째 아들은 조성집(趙性執), 막내아들은 조성신(趙性信)이다.
[활동 사항]
조선수(趙善秀)[1846~1914]는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長浦) 마을에서 태어났다. 1853년(철종 4) 족숙(族叔)인 농아(聾啞)조한진(趙漢珍)에게 수학하였다. 1865년(고종 2) 성재(性齋)허전(許傳), 사미헌(四未軒)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유학(遊學)하였는데, 선조들과의 연원으로 장복추에게 귀의하였다. 부친상과 모친상을 치를 때 상례(喪禮)는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의 유훈(遺訓)을 따랐다. 중년에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三嘉)에 살면서 만성(晩醒)박치복(朴致馥), 후산(后山)허유(許愈)와 학문을 강론하고 교유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의 낙육재(樂育齋)에서 원근의 명석(名碩)들과 시가를 주고받았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4권 2책의 『동애집(東厓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초장산(艸莊山) 해좌(亥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