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포란형의 명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289
한자 金鷄抱卵形- 明堂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집필자 김길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금계포란형의 명당」『함안의 구전 설화』에 수록
성격 설화|민담|풍수담|명당 탈취담
주요 등장 인물 오빠|누이|풍수
모티프 유형 풍수|명당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에서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은 시집가려던 여동생이 이장할 친정 부친의 묫자리가 영의정이 태어날 금계포란형[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명당자리임을 알았다는 풍수담이자, 오빠가 이장하려고 계획한 날 하루 전에 혼인을 하고 그 명당자리에 시아버지의 묘를 먼저 이장했다는 누이의 명당 탈취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5년 함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함안의 구전 설화』의 283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민 강삼룡[남, 64세]이 제보하고, 김영일이 발굴하여 정리한 것이다.

[내용]

옛날 어느 마을에 아버지를 여의고 오빠 슬하에서 자란 과년한 처녀가 시집을 가지 않아 오빠의 애를 태우고 있었다. 괜찮은 집안에서 중매가 들어와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시집가기를 마다하였다. 그러던 중 등너머 마을에서 살림이 넉넉치 못한 양반가에서 혼처가 나왔다.

어느 날 풍수의 명인이라는 사람이 오빠를 방문하여 사랑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를 처녀가 듣게 되었다. 풍수사는 오빠에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영의정]의 명당자리가 있다며 믿지 못하겠거든 날계란을 그곳에 묻은 뒤 보름 후에 가 보면 닭이 활개치며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처녀는 부엌으로 가서 계란을 삶아 시녀를 불러 나누어 먹으며 다음에 사랑방 큰서방님이 날계란을 찾거든 자기가 닭똥을 살짝 묻혀놓은 계란을 갖다드리라고 당부하였다. 그러고는 자기가 등너머 총각에게 시집갈 것이라는 소문을 내게 했다.

혼사 날짜는 풍수사가 금계포란형의 명당에 묘를 이장하면 좋다는 보름날의 전날이었다. 혼사를 마친 오빠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정해진 축시를 기다리다 애가 타서 명당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도 어제 갓 혼인한 누이 부부가 명당자리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놀란 오빠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누이는 자신의 시아버지 무덤을 명당자리에 이장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오빠는 누이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이후 풍수사의 예언대로 누이의 후손 중에 정승에 오른 자손이 있었으며, 그 후손들이 대대손손 벼슬길에 나아갔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금계포란형의 명당」은 주요 모티프는 '풍수', '명당' 등이다. 「금계포란형의 명당」은 명당 모티프를 바탕으로 하는 풍수지리담으로, 특히 금빛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자리를 통해 후손 발복의 소원을 비는 이야기이다. 명당을 뺏기 위해 꾀를 쓴다는 점에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석탈해(昔脫解)가 호공(瓠公)의 집터를 길지(吉地)로 여겨 빼앗는다는 이야기와 유사하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 사상에 근거하여 자손이 번성할 수 있는 명당자리에 묘를 썼다. 자식이 부모의 묘를 잘 써야 효자라는 인식과 현세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민중의 의식에 뿌리 깊게 남아서 명당과 관련된 수많은 설화를 남겼다. 함안군 여항면에서 전승되는 「금계포란형의 명당」은 친정 후손에게 돌아갈 복을 빼앗아 시집의 후손에게 돌리는 '처녀'를 등장시킨 점이 특징이다. 처녀는 지혜를 발휘해 오빠에게 점지된 명당을 빼앗음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의 각성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의 형태로 사회에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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