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기 노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267
영어공식명칭 Song of Rice-planting
이칭/별칭 「정자 소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96년 - 「정자 소리」 채록
채록 시기/일시 2001년 - 「모심기 노래」1 박배열이 칠북면 주민으로부터 채록
채록 시기/일시 2008년 - 「모심기 노래」2 이태호가 이덕선[여, 78세], 이분호[여, 78세], 조을순[여, 78세], 김옥이[여, 70세] 등으로부터 채록
채록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채록지 도음 마을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지도보기
성격 민요|노동요
기능 구분 농업 노동요
형식 구분 1대 1의 선후창
박자 구조 4음보
가창자/시연자 이덕선[여, 78세]|이분호[여, 78세]|조을순[여, 78세]|김옥이[여, 70세]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으며 부르는 노동요.

[개설]

「모심기 노래」는 농민들이 모찌기를 한 다음 논에 모를 심을 때 여럿이 함께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정자 소리」라고도 한다. 논농사는 무엇보다도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어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불리었다. 특히 함안 지역은 넓고 비옥한 평야가 있어 다양한 「모심기 노래」가 전승되는데, 이 노래는 '아침 소리', '점심 소리[낮 소리]', '저녁 소리' 등 때에 맞추어 세분되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1년 이규석이 엮고 함안 문화원에서 발행한 『함안의 구전 민요』에 실려 있는 「모심기 노래」1은 2001년 박배열이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에 거주하는 농민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또한 2013년 함안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간행한 『함안 군지』3에도 수록되어 있는 「모심기 노래」2는 1996년 함안 문화원에서 녹취한 「정자 소리」를 기본으로 하고, 2008년 12월 28일 아라가야 풍물 연구회의 이태호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도음 마을에 사는 주민 이덕선[여, 78세], 이분호[여, 78세], 조을순[여, 78세], 김옥이[여, 70세] 등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모심기 노래」는 길게 뽑아 부르는 긴 정자와 짧고 경쾌하게 부르는 짧은 정자가 있는데, 함안 평야는 대부분 긴 정자 계통이다. 「모심기 노래」의 일반적인 가창 방식은 교환창인데, 노래 부르는 사람이 두 패로 나뉘어 대구(對句)나 문답으로 이루어진 사설을 교대로 주고받는다. 앞소리를 부르는 사람과 뒷소리를 부르는 사람이 다수 대 다수, 혹은 1대 다수이다. 함안 지역의 메기는 소리[선창]와 받는 소리[후창]는 모두 독창으로 1대 1의 선후창이다. 사설은 대체로 4음보로 2행의 분련체 형식을 반복해서 부르며, 여기서 반복적으로 불리는 전 1행과 후 1행의 사설은 대구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노래의 사설은 모를 심는 광경, 농사짓는 보람, 남녀의 연정 등 다양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모심기 노래」1

아침 이슬 채전 밭에 불통 꺾는 저 큰아가/ 불통이야 좋지만은 고개나 살금 들어 보소/ 한강에다 모를 부어 모찌기가 난감하네/ 모야 모야 노랑모야 너 언제 커서 열매 열래/ 이달 크고 훗달 커서 칠팔월에 열매 열지/ 비 묻었네 비 묻었네 진주 덕산에 비 묻었네/ 저 비가 비 아니라 억만 군사 눈물일세/ 서마지기 이 논빼미 반달같이 떠나가네/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물꾸야 청청 헐어놓고 주인네 양반 어디갔소/ 무늬와 정복 에와 들고 처부야 집에 놀러갔소/ 거기 가는 저 구름은 어느 신선이 타고 가요/ 운천하고 천자봉이 놀던 신선 타고 가네/ 알곰삼삼 고운 처녀 줄뽕 남게 앉아 우네/ 줄뽕갈뽕 내 따주마 백년해로 같이 살자/ 낙낙청청 배력 끝에 무정하다 우리 오라비/ 나도 죽어 군자가 되어 처자군식 섬기리라/ 임이 죽어 연자가 되어 천막 끝에 집을 짓네/ 날면 보고 들면 봐도 임인 줄은 나 몰랐네/ 오늘 낮에 점심 반찬 무슨 고기 올랐는고/ 전라도라 고심청어 두럼두럼 올랐다네/ 서울이라 왕대밭에 금비둘기 알을 낳아/ 그 알 한쌍 주웠으면 금년 과거 내 할껄/ 이 논에다 모를 심어 금실금실 영화로세/ 우리 부모님 산소 등에 솔을 심어 영화로다/ 다풀다풀 다방머리 해다졌네 어디가노/ 우리 부모님 산소 등에 젖먹으로 가네/ 밀양 삼당 영남 늪에 연밥 따는 저 처녀야/ 따던 연밥 다 제치놓고 이내 품에 잠들어라/ 해는 지고 어둠침침한데 월명당 안에서 손을 치네/ 손치는 데는 밤에 가고 동네 술집에 낮에 가네/ 오늘 해가 다 졌는가 골골마다 연기나네/ 우리야 할멈 어디 가고 연기 낼줄 모르는고/ 해 다지고 저문 날에 어인 상부가 떠나가노/ 해 다졌네 해 다졌네 영천 땅에 해 다졌네/ 빵긋빵긋 웃는 아기 못본다고 해 다졌네/ 6월달이 두달이면 첩을 팔아 붙이 살가/ 9, 10월이 닥쳐오니 첩 생각 절로 나네.

「모심기 노래」2

모른 논을 삭갈아서 물드는 것 보기 좋네/ 동창문 반만 열고 임 드는 것 보기 좋네/ 서울이라 쌀곳 안에 꽃이 피어 씨러졌네/ 우리 형제 잔을 들고 부모 앞에 씨러졌네/ 사래질고 광넓은 밭에 목화 따는 저 큰 아가/ 목화는 애 따주마 이내 품에 잠들거라/ 찔레꽃 깨쳐 내여 임모야 보선에 볼 걸었네/ 임 보고 보선 보니 임 줄 정이 다시 없네/ 찰각 찰각 장롱 안에 모시 입성 가득 찼네/ 우리 님은 어데가고 모시 입성 안 입는고/ 노랑노랑 새 삼베치마 주름주름 상내 나네/ 내한테는 상내 나고 임한테는 향내 나네/ 날래부세 불을 쳐서 임모야 담배 불 달았네/ 담배맛이 요만할 때 임모야 정은 어떻것노/ 꽃아 꽃아 고운 꽃아 높은 산에 피지 마라/ 니 암만 곱게 핀들 어느 나비 찾아 오리/ 배꽃일래 배꽃일래 처녀수건 배꽃일래/ 배꽃 같은 수건 밑에 거울 같은 눈매보소.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함안은 넓고 비옥하며 용수가 풍부한 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벼농사가 발달하였다. 그러므로 「모심기 노래」가 농업 노동요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정자'로 불리고 있다.

[현황]

현재는 대부분의 농사일이 기계화함에 따라 모도 이앙기(移秧機)로 심는다. 따라서 들에서 「모심기 노래」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단지 하나의 전통 풍속으로 축제나 행사를 통해 불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민요는 사람들의 인정, 풍속, 생활 감정 등을 나타내어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노래이므로 어떤 재주나 기교가 없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모심기 노래」는 곡창 지대였던 함안 들판에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으며, 함안 농민들의 농사 풍속을 알 수 있는 민속자료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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