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81
한자 韓鍾憲
영어공식명칭 Han Jonghe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3길 89[봉성리 931]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4월 3일연표보기 - 한종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한종헌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31년 10월 25일연표보기 - 한종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 - 한종헌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한종헌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한종헌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3길 89[봉성리 931]
활동지 경상남도 함안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한종헌(韓鍾憲)[1898~1931]은 1898년 4월 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기중(韓基重)이 있다.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함안에서는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이 상경하였다. 그들은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하여 함안군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연락을 취하면서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운동을 결의하였다.

한종헌은 형인 한종순에게 서울의 시위 운동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 계획에 참여하여 만세 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3월 19일 정오, 한종헌이찬영·이희석(李喜錫) 등의 주도자와 비봉산(飛鳳山)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지내고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수백 명의 군중을 이끌고 만세 운동을 시작하였다. 오후 2시경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마산에서 출동한 경찰 서장 기타무라[北村]와 현지 경찰이 무력으로 저지하려 하였다. 이에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 등을 습격하였다. 또한 폐쇄하여 놓은 군청 문을 부수고 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처벌을 하였다.

한편, 조한국(趙漢國)·강상중(姜相中) 등이 마산의 일본군 수비대와 통하는 전화선을 끊자, 비상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짐작한 마산 중포병 대대에서 16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현지 경찰과 합세로 주도자를 검거하였다. 한종헌은 피신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하였으나 결국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16일,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함안 주재소 오하야시[大林] 순사 부장, 함안 군수 민인호, 순사보 최근호(崔根浩) 등의 증언을 받아들여 한종헌에게 2년 6개월 형을 선고하여 투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한종헌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이 인정되어 1980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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