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62
한자 趙鏞元
영어공식명칭 Jo Yongw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5월 23일연표보기 - 조용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용원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72년 2월 18일연표보기 - 조용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6년 - 조용원 대통령 표창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조용원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함안읍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일어났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의논하여 계획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하였다. 오후 2시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이에 마산 경찰 서장과 현지 경찰들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시위 군중은 격노하여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시위 군중은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를 시위행진하며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파견된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 16명과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며 끝이 났다.

[가계]

조용원(趙鏞元)[1886~1972]은 아들로 조해제(趙海濟), 조갑제(趙甲濟), 조삼제(趙三濟)가 있고 딸은 조계순(趙桂順)이다. 손자는 조강래(趙崗來), 조성래(趙星來), 조양래(趙陽來), 조학래(趙學來)가 있다.

[활동 사항]

조용원은 1886년 5월 23일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에서 태어났다. 홍릉 참봉(洪陵參奉)으로 재직하다가 사직하고 한일 병합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었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군중을 선동하고 적극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을 펼쳤는데, 특히 함안군 군북면 일원의 군중을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조용원의 활동은 "피고 조용원은 3월 19일 오후 2시경 주재소 안에서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군중을 선동하였다"라는 재판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오야시[大林] 순사 부장은 2,000여 명의 군중이 전후 여섯 차례에 걸쳐 주재소를 습격하여 유치장을 파괴하고 각종 기물을 파괴할 때 조용원은 주재소 안에서 폭행을 자행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조용원은 함안 군수 민인호 폭행에도 동참하였다. 함안읍 만세 운동 과정에서 군중을 선동하고 적극 참여한 일로 체포되어 징역 6개월 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72년 2월 18일 84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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