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32
한자 李洙貞
영어공식명칭 I Sujeo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 9월 25일연표보기 - 이수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수정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34년 9월 18일연표보기 - 이수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 - 이수정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이수정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수정 함안읍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함안읍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일어났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함안군 대산면의 안지호(安知鎬)와 의논하여 계획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오후 2시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이에 마산 경찰 서장과 현지 경찰들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시위 군중은 격노하여 경찰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시위 군중은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를 시위행진하며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파견된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 16명과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며 함안읍 만세 운동은 끝이 났다.

[활동 사항]

이수정(李洙貞)[1890~1934]은 1890년 9월 25일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이 3월 19일로 계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함안면대산리괴산리의 군중을 동원하는 일을 하였다. 거사 당일 정오 비봉산 고천제와 태평루의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이후 진행된 시위행진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재판 기록에 "돌을 던져 기물을 파괴하고 군중과 같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라고 하였으며, 민인호 함안 군수는 자신이 군중에게 모자와 칼을 빼앗기고 옷이 찢어지는 봉변을 당할 때 폭행에 동조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한편 주재소 습격에도 참여하였다. 이 일로 이수정은 경찰에 체포되어 1년 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고문 여독으로 1934년 9월 18일 4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손자로 이정태(李正泰)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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