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83
한자 安信甲
영어공식명칭 An Singap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4년연표보기 - 안신갑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안신갑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37년 - 안신갑 정려각 건립
출생지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부임|활동지 초계군 -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묘소|단소 묘소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 산140-2
사당|배향지 두릉 서원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성격 의병장
성별
본관 순흥
대표 관직 초계 군수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할아버지는 안공진(安公軫)이다. 아버지는 감찰관을 지낸 안민(安慜)이며, 어머니는 최운철(崔雲喆)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활동 사항]

안신갑(安信甲)[1544~1597]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 안민이 왜장 구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의 대병과 김해에서 전투를 치르다 전멸하자 부친의 원수를 갚고 나라의 치욕을 설욕하고자 의병에 가담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초계 군수에 제수되었으나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해당 관청의 탄핵으로 면직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산음(山陰) 전투에서 적과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전멸하자 환아정(換鵝亭) 깊은 못에 몸을 던져 사망하였다. 선조가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상히 여기며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죽음도 잊어버린 채 적에게 송골매와 같은 용맹으로 나아가 부친의 복수를 하고 나라의 치욕을 설욕했으니 충신은 반드시 효자의 집안에서 나온다는 말은 이를 일컬은 것이 아닌가?"

[상훈과 추모]

선조가 판결사로 추증하였다. 두릉 서원에 안희(安熹), 안민과 함께 배향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 산140-2번지에 정려각이 있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와가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려각 안의 현판에는 '충신 증통정대부 장례원 판결사 통훈대부 행초계 군수 안신갑지려 명정(忠臣贈通政大夫掌隷院判決事通訓大夫行草溪郡守安信甲之閭命旌)'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의 정려각은 1937년 건립된 것이며 정려각 옆에 애마(愛馬)와 갑옷, 투구를 묻었다고 한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3.29 인명 한자 오탈자 수정 安敏 -> 安慜, 安喜 -> 安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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