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80
한자 趙性濂
영어공식명칭 Jo Seongryeom
이칭/별칭 낙언(洛彦),심재(心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6년연표보기 - 조성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0년 - 조성렴 허전이 저술한 『사의』를 간행하는 일을 추진
활동 시기/일시 1873년 - 조성렴 『사의 절요』 2책 편찬 간행
몰년 시기/일시 1886년연표보기 - 조성렴 사망
출생지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
묘소|단소 조성렴 묘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
성격 학자
성별
본관 함안
대표 관직|경력 통덕랑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낙언(洛彦), 호는 심재(心齋).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도암공파(韜巖公派)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덕암(德岩)조식(趙湜)이며, 아버지는 담와(澹窩)조맹식(趙孟植)이다.

[활동 사항]

조성렴(趙性濂)[1836~1886]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계당(溪堂)유주목(柳疇睦)에게 배웠으며, 1864년(고종 1) 성재(性齋)허전(許傳)이 김해 부사로 내려오자 스승으로 섬기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1870년(고종 7) 함안에서 허전이 저술한 『사의(士儀)』를 간행하는 일을 추진하였고, 1873년에 별도로 이를 다시 요약한 『사의 절요(士儀節要)』 2책을 혼자 힘으로 편찬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알렸다.

1876년(고종 13) 흉년이 들자 가산을 팔아 이웃을 구제하였다. 그 덕망과 선행이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 통덕랑(通德郞) 벼슬을 내리기도 하였다. 면우(俛宇)곽종석(郭鍾錫)은 『심재집(心齋集)』 서문에서 “공의 학문은 반드시 그 아는 것을 실천하기를 급선무로 여겼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진력하여 어려움을 꺼리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부모를 섬기고 부지런히 정성을 다하였으며, 상을 당해 슬픔을 다하니 여막 곁에 효천(孝泉)이 솟았다.”라고 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함주 삼강록(咸州三綱錄)』과 『심재집(心齋集)』이 있다. 특히 예학과 심학에 정진하여 항상 『심경(心經)』을 가까이 두고 생활하였기 때문에 호를 ‘심재’로 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수동 마을 입구에 ‘조심재 선생 사적비(趙心齋先生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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