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58
한자 趙澣奎
영어공식명칭 Jo Hangyu
이칭/별칭 수경(受卿),척암(惕庵)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조한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 조한규 사망
출생지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수학|강학지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묘소|단소 조한규 묘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묘소|단소 조한규 묘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성격 학자
성별
본관 함안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수경(受卿), 호는 척암(惕庵). 조선단종(端宗)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15세손이고, 조면도(趙勉道)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성모(趙性謨)이며, 어머니는 주시용(周時用)의 딸 상산 주씨(商山周氏)이다. 부인은 세 명을 맞았는데, 첫 번째 부인은 최동옥(崔東玉)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 두 번째 부인은 이광규(李光奎)의 딸 성산 이씨(星山李氏), 세 번째 부인은 이승현(李升鉉)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둘째 부인이 아들 조종정(趙鍾政)과 전용익(田溶翼)에게 시집간 딸을 낳았고, 셋째 부인은 딸 여섯을 낳았다.

[활동 사항]

조한규(趙澣奎)[1887~1957]는 1916년 계화도(繼華島)로 전우(田愚)를 찾아가서 수학한 뒤 한평생 전우의 학문을 본령으로 삼았다. 전우가 조한규에게 척암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전우가 사망하자 영정을 백운 정사와 의산 서당에 봉안하고, 봄가을로 강회를 열어 전우의 학문을 추모하였다. 개성의 숭양 서원(崇陽書院), 안동의 도산 서원(陶山書院), 청주의 화양 서원 등 선현의 사당과 서원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제자들을 교육할 때에는 『소학(小學)』을 먼저 배우게 하고 그 뒤에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혔다.

[학문과 저술]

심성(心性)을 논하는 글에 “성(性)이 곧 이(理)이고, 심(心)은 곧 기(氣)이다.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니, 성현의 진실한 가르침이다.”라고 하였다. 저서로 6권 3책의 『척암집(惕庵集)』이 있다.

[묘소]

처음에는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의 뒷산 기슭 미좌(未坐) 언덕에 장례 지냈다. 이후 함안군 대산면의 악양산 북쪽 산록 정좌(丁坐) 언덕으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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