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651
한자 篁谷集
영어공식명칭 Hwanggokjip
이칭/별칭 『황곡 선생 문집(篁谷先生文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황곡집』 간행
소장처 경상 대학교 문천각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501[가좌동 277-4]
성격 시문집
저자 이칭
간행자 이익룡|이익호
권책 3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0.9×30.9㎝
어미 내향 흑어미(內向黑魚尾)
권수제 황곡 선생 문집(篁谷先生文集)
판심제 황곡 선생 문집(篁谷先生文集)

[정의]

1923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칭의 문집.

[저자]

이칭(李偁)[1535~1600]의 본관은 광평(廣平)이며, 자는 여선(汝宣), 호는 황곡(篁谷)·관화간죽옹(灌花看竹翁)이다. 부인은 박윤수(朴允秀)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동지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숙부 임훈(林薰)과 임운(林芸)에게 배웠고, 뒤에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 피난을 갔다가, 1599년 고향으로 돌아와 현재의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상검 마을에 우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편찬/간행 경위]

『황곡집(篁谷集)』은 1600년대 말 이칭의 증손인 이시창(李時昌)의 주도로 최초로 편찬이 시도되었으나 당대에 간행되지 못하였다. 1865년 7세손 이문갑(李文甲)이 유고의 편차를 정하였으나 바로 간행되지 못하고, 1923년 이문갑의 손자들인 이익룡(李益龍)과 이익호(李益灝)에 의해 간행되었다. 『황곡 선생 문집(篁谷先生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3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내향 흑어미(內向黑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9㎝, 세로 30.9㎝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황곡 선생 문집(篁谷先生文集)'으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허전(許傳)과 이훈호(李熏浩)의 서문(序文)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詩) 47수, 권2에는 서(序) 1편, 제문(祭文) 1편, 행장(行狀)과 고유문(告由文)이 각각 1편씩 실려 있다. 권3 부록에는 만사(輓詞) 3수, 제문(祭文) 5수, 이장시 제문(移葬時祭文) 2수, 가장(家狀), 행장 2편, 묘갈명(墓碣銘), 도림 서원 봉안문(道林書院奉安文)과 이문갑(李文甲)이 지은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봉정 오전의언의(奉呈吳全義彦毅)」, 「봉정 안상사택(奉呈安上舍宅)」, 「봉정 조도사연(奉呈趙都事淵)」 등은 이칭이 분수대로 삶을 살며 벼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단념하고 경학의 연구에 전심전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야좌억가향(夜坐憶家鄕)」과 「정여계당상망두류유감(鄭汝啓堂上望頭流有感)」 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백성들의 참상을 묘사하고 전란을 불러들인 위정자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고통당하는 백성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있다. 「희사제길병유(喜舍弟佶病愈)」는 정유재란 때 한 동생을 잃고 말년에 남아 있는 한 동생과 검계(儉溪)에 정자를 지어놓고 날마다 어울렸는데, 이 동생이 병에 걸렸다가 완쾌된 뒤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황곡집』이칭의 사상과 학문, 사회상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주요 자료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함안의 백성들을 연민하는 유학자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문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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