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602
한자 心守軒 遺稿
영어공식명칭 Simsuheonyugo
이칭/별칭 『심수헌집(心守軒集)』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심수헌 유고』 간행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시문집
저자 안병반
간행자 안식원
권책 4권 1책
행자 10행 20자
권수제 심수헌집(心守軒集)
판심제 심수헌집(心守軒集)

[정의]

1942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병반의 시문집.

[저자]

안병반(安炳斑)[1875~1941]의 본관은 탐진(耽津)이며, 자는 성문(聖文), 호(號)는 심수헌(心守軒)이다. 할아버지는 미동(嵋東)안종락(安鍾洛)이며 아버지는 안식민(安植敏), 어머니는 노병선(盧秉善)의 딸 광주 노씨(光州盧氏)이다. 부인은 이정억(李庭億)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질과 풍채가 남달랐으나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두 눈을 실명하였다. 대여섯 살 때에 할아버지 안종락에게 한문을 수학하였는데, 입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는 곧 수백 자를 외울 줄 알았다. 안종락은 기특하게 여기며 유학에만 전념할 것을 훈계하였다. 안종락이 세상을 떠나자 숙부 성암공(惺菴公)에게 수학하였다. 당시 대학자인 만구(晩求)이종기(李種杞)[1837~1902]가 그의 집을 찾아왔는데 가르침을 청하였다. 만구가 그의 자질을 칭찬하며 심지(心志)가 열려 있으면 마음이 어두운 사람을 이길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후로 호를 ‘심수(心守)’라고 지어 평생을 교훈으로 삼았다.

[편찬/간행 경위]

심수헌이 세상을 떠난 지 1년만인 1942년[기사]에 족숙(族叔)인 성암안식원(安植源)의 주도로 평생 쓴 초고를 모아 『심수헌 유고(心守軒遺稿)』를 발간하였다. 안식원이 평소 교분이 두터운 성주에 사는 성와(惺窩)이기형(李基馨)[1868~1946]에게 서문(序文)을 부탁하여 실었다. 참고로 이기형은 사미헌(四未軒)장복추(張福樞)[1815~1900]의 문인으로 유림 독립운동인 파리 장서 서명인이다. 발문(跋文)은 맏아들 안정기(安鼎基)가 일산(一山)조병규(趙昺奎)의 문인인 척재(拓齋)이종호(李鍾浩)[1884~1948]에게 부탁하여 실었다. 『심수헌집(心守軒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4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심수헌집(心守軒集)'으로 되어 있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는 시(詩) 52제(題) 55수(首)와 만사(挽詞) 14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2에는 흘와(吃窩)이근옥(李根玉)에게 올린 글을 비롯한 18편의 편지글과 외할아버지 청계(淸溪)이정억(李庭億)의 제문(祭文)을 비롯한 7편의 제문이 실려 있다. 권3은 부록으로 만사와 제문이 실려 있다. 권4 역시 부록으로 숙부 안식원이 지은 가장(家狀), 김현동(金鉉東)이 지은 행장(行狀), 김기로(金基魯)가 지은 묘갈명(墓碣銘), 정지순(鄭之純)이 지은 묘지명(墓誌銘), 우하구(禹夏九)가 지은 전(傳), 이관후(李觀厚)와 남정우(南廷瑀)가 지은 「심수헌기」, 양종락(楊鍾樂)이 지은 「심수설」, 이정후(李定厚)가 지은 「심수헌명」과 이종호가 지은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심수헌 유고』는 안병반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두 눈을 실명하고 평생 유학에 정진한 결과물을 담은 문집이다. 안병반이 마음을 성정(誠正)하게 하는 것과 성리서(性理書)에 뜻을 두고 평생 저술을 즐겨하지는 않았지만, 시문은 평담(平淡) 아실(雅實)하여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은 글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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